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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

진상 : 창녀를 증오하는 여성들

진상 : 창녀를 증오하는 여성들
석영

 

 


오늘은 2020년 4월 2일이다. 2018년 4월 2일은 ‘메루메루’의 기일이다. 나 ‘석영’은, ‘메루메루’의 죽음 및 기일과 관련, 2020년 4월 현재까지 자행되고 있는 극악무도한 사이버불링 사건을 고발하고자 한다. 성노동자를 ‘여성 인권을 추락시키는 존재’라 재단하며, 여성사 및 여성운동사의 계보를 철저히 무시한 채 “성노동론은 페미니즘도 아니기에 학계에서도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워마드 래디컬 페미니스트, TERF(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t), SWERF(Sex-Worker-Exclusionary Radical Feminist)들을. 그리고 그들이 왜곡하고 어그러뜨린 사건의 진실을 알리며 거짓을 바로잡고자 한다. 피해자들이 필사적으로 사실관계를 정정하고 가해 중단을 호소해도 모르쇠로 일관하며 성노동자 혐오를 자행하고, 고인 ‘메루메루’를 포함한 사이버불링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극렬하게 성노동론을 매도하며 ‘메루메루’의 주변인인 전 성노동 운동 활동가 ‘밀사’를 공격하려는 목적 아래, 고인의 생애와 죽음을 왜곡하고 악소문을 날조하여 반성매매 프로파간다의 땔감으로 소모하길 서슴지 않는, 그런 끔찍하고 처참한 가해가 지금 이 순간도 끊이지 않은 채 계속되고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

그들은, 남겨진 고인의 주변인들이 자살 생존자로서 고인을 추모하는 마음을 폄하하는 것도 모자라, 고인의 친밀한 주변인이었던 ‘밀사’를 향해 “고인을 죽인 것은 밀사 너다”라는 매도를 서슴지 않았으며, 이러한 가해에 아무런 죄의식이 없었다. 이 비인도적인 가해 행위가 위 ‘페미니스트’ 집단으로부터 행해졌다는 사실을, 그들이 성노동자들을 손쉽게 불링할 수 있었던 기저엔 ‘성찰의 소홀을 밑절미 삼는 굳은 편견과 혐오’가 존재했음을 낱낱이 빠짐없이 폭로하고자 한다. 현재까지도 피해자들, 특히 ‘밀사’는 충분하게 고인을 추억하며 애도할 시기와 기회를 잃은 채 추모할 권리를 되찾기 위한 싸움을 고인 사후 만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만두지 못하고 있다. 이 전부를 아우르는 긴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0. 고인 ‘메루메루‘에 대하여 

본격적인 사실관계를 말하기 전에, 고인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부터 건조하게라도 알릴 필요가 있겠다. 고인은 전라북도 익산시에 거주 중이던 성노동자였고, 트위터를 위시한 여러 웹 플랫폼에서 성노동 담론을 자주 이야기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성노동이 노동이죠. 노예노동도 노동이구요. 뭘 어떻게 해도 그게 노동이 아니게 될 수가 없다. 그게 동시에 착취일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일단 성노동이 노동이라는 명제를 수호하지 않고는 성판매시장에 대해 아무 것도 이야기할 수 없다. 왜냐면 그 사람들은 노동을 하고 있으니까.”라고 말했고, 성노동이 ‘노동’임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가 운영했던 웹 플랫폼들에는 생전의 그가 치열히 고민한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그 중에는 ‘성노동자 네트워크 손’의 요청을 거절하고 본인의 블로그에 직접 게재하여 트위터에 파문을 일으켰던 <저는 성노동을 너무 사랑하는 성노동자입니다>라는 제목의 글도 있다.

 

2017년 12월 4일 트위터에 게재된 고인 '메루메루'의 기록

 


 

 1. 기일 이전의 사건 

사건은 2018년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멤버 중 일본 AV 배우 경력을 가진 사람이 있는 걸그룹 ‘허니팝콘’ 이 K-POP 아이돌로 데뷔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고인은 해당 그룹의 존재와 데뷔를 응원하는 내용의 성노동 담론 및 의견을 트위터에 게재했다. 이후 고인은, 워마드 래디컬 페미니스트 집단으로부터 “현재 활동하고 있는 걸그룹에게 피해가 된다”, “AV 배우/창녀가 한국 여성 인권을 멱살잡고 끌어내리는 것이다”, “허니팝콘이 데뷔하면 기존 걸그룹들도 마찬가지로 성적 대상화를 당한다”, “데뷔를 지지하는 것은 성상품화를 지지하는 것이다”라는 논지의 사이버불링을 당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고인이 트위터 플랫폼에서 공개적으로 성노동자임을 밝힌(openly-sexworker), 성노동론에 깊은 관심을 가지며 관련 담론을 자주 언급하고 지지하는 사람이었다는 맥락도 함께 작용했다.

 



 2. 2018년 4월 2일 즈음 

고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면서, 트위터 플랫폼에서 고인과 교류했던 사람들 및 그와 친분이 있던 지인들은 충격과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다. 사망 직전까지도 고인의 계정에는 고통스러워하는 기색이나 암시가 담긴 글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고인의 죽음은 갑작스럽게 다가왔고, 주변인들은 몹시 힘들어하고 슬퍼했으며 여느 ‘자살 생존자’들이 무릇 그렇듯, 고인이 ‘왜’ 그러한 선택을 했는지 원인을 찾으려 했다. 고인의 신경정신과 병력으로 사망 원인을 추측하기도 했고, 고인의 불링 사건 이전 과거 기록 중 “내가 죽는다면 성노동론 때문도 래디컬 페미니스트들 때문도 아니고 죽을 만해서 죽은 것”이라는 내용의 트윗을 찾아내기도 했다. 누군가의 마지막 선택이 그렇듯 망자는 말이 없기 때문에, 결국 ‘왜’ 그랬는지는 고인이 된 당사자 말고는 알 수 없어졌다.

‘자살 생존자’들이 무릇 그렇듯, 주변인들은 자책하며 힘들어했다. 트윗부터 에버노트까지 다양한 플랫폼의 추모글이 게재되었고, 장례식 날짜, 빈소 위치, 발인일 등이 트위터로 알려졌다. 고인이 트위터에서 자주 오랫동안 활동했으며 팔로워 700명 가량 규모의 계정을 운영하고 있었고, 고인의 적지 않은 인간관계가 트위터로 맺어졌기 때문에, 그 여파는 상당했다. 주변인들은 고인의 닉네임이었던 ‘메루메루~’와 고인 트위터 계정 프로필 소개말의 ‘빔~’을 합쳐 ‘#메루메루빔’이라는 해시태그를 만들었다. 고인과 교류했던 사람, 고인과 의견 대립이 있었으나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고자 하는 사람, 고인과 긴밀했던 주변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트윗에 ‘#메루메루빔’을 붙이고 ‘메루메루빔~’을 말하며 ‘웹 장례식’ 물결을 일으켰다.

남겨진 사람들이 이렇게 고인의 타계 소식에 여전히 혼란스러워하며 고인과 얽힌 추억이나 이야기를 계속 게시할 즈음이었다. 워마드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이 ‘#메루메루빔’이라는 추모 방식을 트집 잡으며 “추모가 아닌 조롱이고 고인 모욕”이라는 매도를 시작했다. 평소 고인과 일면식 없던 사람들이나(‘블루스웨이드’ @__bluesuede), 심지어 생전 고인에게 불링 가해를 자행했던 자들(‘첫사랑해리’, 현재 계정 ‘이사한순악질여사’ @proletariusxx2)까지, ‘메루메루’의 주변인들이 게재하는 고인의 추억과 이야기를 악의적으로 편집•왜곡해 본인의 계정에 재게시하는 방식으로 ‘메루메루’의 주변인을 불링했다. 이들은 ‘메루메루’ 생전부터 성노동론을 비난하고, 성노동 운동가인 ‘밀사’를 꾸준히 불링해왔다.

트위터 유저가 사망했을 때, 그의 주변인이 그의 계정 혹은 본인의 계정에 장례식 일자, 위치, 발인일 등을 트윗 게시로 고지하는 경우는 흔하다. 고인이나 그와의 기억과 추억, 그를 기리는 추모의 문장을 쓰는 것 또한 늘 일어나는 일이다. 이를 두고 고인의 주변인을 향한 불링이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자행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18년 4월 4일 ‘블루스웨이드’의 트윗. 본인이 썼던 ‘메루메루’ 단어가 포함된 트윗은 4일 이전으로 모두 삭제되어 있다.

 

‘이사한순악질여사’의 불링 내용

 



 3. 기일 이후 

불링의 수위는 점점 높아져 갔다. 2018년 5월 30일, 워마드 래디컬 페미니스트 진영의 트위터 유저 ‘쉼터에 살았다’(@shimsal_ram)는 ‘메루메루’의 죽음을 ‘도저히 그냥 지나갈 수 없는 사건’이라 말했다. 그는 ‘성노동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을 알’고 ‘성노동론을 보고 성판매가 제법 괜찮은 노동으로 느껴졌다’며, ‘성매매를 하기 위해 애인과 헤어질까 고민할 만큼 정신이 망가진 상태’였다고 피력했다. 이어서 “저같은 탈가정 청소년분이 주체적 성노동론을 받아들이며 성매매를 시작했고, 사귀던 포주에게 정신과 단약을 당하다가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였다. 명백한 피해자가 나왔는데, 뭘 위해 주체적 성노동론을 계속 주장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주체적 성노동론의 주장을 위해 한 탈가정 청소년이 죽은 것을 미화시키고 실상을 묻으려고 하는 것을 막아달라”며, ‘청소년 성매매 알선 및 성노동론 주장을 위한 피해자 미화’가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이 내용이 ‘SNS 아동 · 청소년 성매수 근절’ 계정(@snsgo05)에 리트윗되었고, 이어 해당 계정은 “트위터로 성노동론자 페미들이 가출 청소년들에게 성매수를 알선하고 착취하고 돈을 빼앗아 그 과정에서 어떤분이 자살하셨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는 내용의 트윗을 게재하며, 공론화 및 해시태그 운동을 전개할 것을 선포했다. 계정 운영을 위해 조직된 시스템 팀은 ‘상황의 심각성을 공론화할 수 있는 자료를 배포할 것’, ‘SNS상의 성매수 계정을 영구 정지 및 처벌하는 근거를 마련할 것’, ‘나아가 SNS 내 아동성착취 계정 피해생존자를 지원하는 정책 수립을 하고자 함’의 목표 내용이 담긴 트윗을 게재했다. 워마드 래디컬 페미니스트 진영이 이 공론화 계획에서 일컫는 ‘피해자’란 ‘메루메루’였고, ‘메루메루’의 주변인 ‘밀사’는 ‘메루메루’의 죽음을 조장하고 방조한 대표적 성노동론자 페미니스트로 지목되었다. 성노동 당사자 활동가 ‘녜녕’에 대해서도, 그가 성노동자 당사자를 위해 트위터 계정에 게재한 글 <조건녀의 조건>이 ‘조건 만남에서 주의할 점이나 요령을 공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취약계층 청소년 성매매를 알선한다’는 매도를 서슴지 않았다.


좌측, 청소년 성매수 근절 계정이 당시 게재했던 내용.  우측, 해시태그 투표 결과


2018년 6월 2일, 이들은 ‘#트위터_포주_OUT’, ‘#안티페미_페이강간_OUT’, ‘#성노동론자_청소년_성매수_공론화’ 세 가지 해시태그 중 투표로 선정된 태그인 ‘#성노동론자_청소년_성매수_공론화’로 총공을 선포하며, “트위터 내 취약계층 여성/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성판매를 권유 및 알선하고 성착취적 현실은 알리지 않으며 성노동론으로 착취를 지우고 유입법을 자세히 공유해 청소년들이 유입되는 현실을 폭로하고 피해를 막는다”는 목적을 천명했다. 고인이 사망 당시 만 21세로 이미 청소년이 아니었고 ‘밀사’는 고인에게 성노동을 권유한 적이 없다는 지적에도, ‘쉼터에 살았다’ 계정은 “청소년의 범위는 만 24세까지로, 그 분(‘메루메루’)은 탈가정 청소년이 맞다.”, “주체적 성노동론 옹호자들이 성매매 권유를 직접 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게시한) 성매매가 할 만하다, 돈 많이 벌고 행복하다는 내용들이 정말 온전히 무해하다고 생각하지 말길 바라며, 직접 권유한 적 없다고 빠져나가지 말아라”, “이 이야기를 공론화해서 제2의, 제3의 메루메루가 나오지 않길 바라며 말을 얹었을 뿐이다. 내용을 정정하고도 성매매 여성이 착취와 방관 끝에 자살을 택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성매수 근절’ 계정은 ‘쉼터에 살았다’ 계정의 해당 트윗들을 리트윗해 확산을 유도했다.


‘쉼터에 살았다’의 원 트윗 및 다음날에 게재한 트윗


2018년 6월 9일, 이들은 본격적으로 ‘#성노동론자_청소년_성매수_공론화’ 해시태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한 래디컬 페미니스트는 ‘녜녕’의 글 <조건녀의 조건>, 익산 업장에서 함께 일할 성노동자를 모집한다는 내용의 ‘밀사’의 구인글 캡처를 올리며 “조건만남 입문법 올리고, 룸으로 오라고 알선하는데, 알선한 적 없다고 하면 웃기지 않느냐.”는 트윗을 게시했다.‘메루메루’는 탈가정 후 성판매로 생계를 이어가다가, 성노동론 페미니스트이자 포주인 ‘밀사’와의 만남을 통해 성노동론을 접한 뒤, 성판매가 주체적인 일이라 믿고 그 세뇌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결국 포주 ‘밀사’에게 학대당해 자살했다”는 날조된 주장이 기정사실로 굳어져 일파만파 퍼졌다. 해당 총공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성매수 근절’ 계정주는 본인 또한 성판매 경험 당사자라 밝히며, “너무 위험해서 결국 성매매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게 되었다. 성매매는 절대 정상적인 업계가 아니다”라 말했다. 워마드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은 “성매매는 페이 강간, 성노동론은 성매수를 이론으로 포장한 것, 성매매와 성판매자의 존재 자체가 여성혐오”라는 비난을 퍼뜨렸다. 고인의 주변인들마저 고인이 세상을 떠난 이유를 알 수 없는데도, 워마드 래디컬 페미니스트 집단은 자신만만하게 ‘메루메루’ 주변인들의 증언을 본인들의 주장에 유리한 방향으로 짜깁기했다. 이를테면 “‘밀사’는 포주가 아니었다. ‘밀사’가 맡은 것은 가게에 고용된 직원들을 관리하는 역할인 실장직이다”, “‘메루메루’와 사실혼 관계에 있었던 남성 업주는 ‘메루메루’의 향정신성 약물 복용을 못마땅해했고, 이따금 그것을 뺏기도 했다”는 증언은, “포주 ‘밀사’ 때문에 ‘메루메루’는 처방받은 항정신성 약물조차 복용하지 못해 결국 자살했다”고 편집되어 “‘메루메루’ 사망의 진상”이라는 이름으로 집단적으로 유포되었다. 이들은 이 날조된 ‘진상’을 바탕으로 성노동 운동 활동가 및 성노동자 당사자 계정들, 특히 포주로 지목된 ‘밀사’에 대한 강도 높은 괴롭힘을 이어갔다.

 



 4. 루머의 재생산 

2018년 중반, 고인의 주변인 ‘프로작’은, 고인의 친동생이 직접 작성한 글을 전달받아 본인의 계정에 게시했다. 평소 고인과 긴밀했던 그는 해당 글에서 ‘메루메루’의 생애와 죽음에 관한 사실 관계를 정정하고 현 상황에 대한 본인의 심정을 적은 뒤, ‘메루메루’의 죽음을 이용한 불링을 멈춰달라고 호소했다. 이 글이 게시된 직후에는 다소 분위기가 잠잠해지는 듯했고 해시태그 총공도 멈추었지만, 사이버 불링이 종식된 것은 아니었다.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에 성노동 관련 키워드가 오를 때마다 재차 ‘메루메루’의 주변인을 겨냥한 사이버 불링이 시작되었다. 주변인들이 고인의 평소 유지를 존중하며 고인을 추모하려는 목적의 고인의 트위터 토막글 아카이빙 봇을 만들자, 워마드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은 이 또한 고인에 대한 모욕이라고 비난했다.

2019년 8월 6일, 트위터 유저 ‘김밈(@kim_meme_)’은 앞서 확산된 루머를 가공하여 재생산하는 트윗 타래를 썼고, 수천 명이 그것을 알티했다. ‘김밈’은 2014년엔 ‘밀사’와 함께 ‘성노동자권리모임 지지 ’에서 활동했고, 과거 고인과도 트위터에서 교류한 적 있었다. 그는 번호까지 붙여가며 다음과 같은 내용을 주장했다. “고인을 죽인 것은 익산의 모 숙식 제공 업소의 포주였다. 고인은 ‘밀사’의 소개로 익산의 업소에 고용되어 다른 성노동자들과 함께 일했으나, 이후 고인을 제외한 성노동자들은 고인을 남겨두고 모두 퇴사했다. 포주와 고인 둘만 남은 상태에서 포주는 고인을 ‘그루밍’하고 착취했다. 물리적 폭력, 핸드폰 압수, 감금, 경제적 통제 등이 벌어졌고, ‘밀사’를 포함해 그와 함께 일했던 성노동자 당사자들 모두가 그 사실을 알았으나 개입하기는커녕 관음하며 방치했다. 결국 고인의 신경정신과 약을 포주가 훈육이라는 명분하에 빼앗았고, 이로 인해 피해 여성은 사망했다.”. 또한 여기에 ‘김밈’ 본인의 해석을 덧붙여, “포주와의 SM-DS관계에 대한 주변인의 (미온적이고 관음적인) 반응들이 고인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었으며, 인터넷상에서 점점 과격한 언사를 써서 자신의 일(성노동)을 방어한 것은 이러한 (판단력을 상실한) 상태였기 때문”이라 주장했다.

 

끝으로 그는 “성노동론은 단순히 헛소리인 것을 넘어 실제로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피해자가 자신이 겪는 피해를 사랑으로 착각하고 자신이 처한 상황을 노동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이론 따위는 없어져야 한다. 여성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유해한 이론을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으로 학계에 들어오는 걸 지켜보지 말아달라. 그것은 페미니즘이 아니다.”라고 호소했다. 성노동론은 여성들로 하여금 “‘성매매를 반대하면 내가 현장의 취약여성들을 경멸하는 사람이 되’는 건가”라고 ‘교묘하게 혼동시키’며, ‘취약한 여성을 더욱 취약하게 하고 포주를 배불리는 이론’이라는 것이다. 그는 공창제 실시를 언급하며, “한국 성산업이 여성을 보호한 적은 없다. 성노동론이 여성들에게 기여한 게 도대체 뭐냐”고 물었다.

‘강제 단약이 있었던 것 같다’, ‘업주 남성이 고인의 휴대폰을 뺏고 감금했다’는 추측을 올렸던 고인의 주변인 ‘프로작’이,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고 사실관계를 정정했으나, ‘김밈’은 자신의 주장을 전혀 수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메루메루 아카이빙 봇(@smells_like_bot)’과 관련한 ‘프로작’의 트윗을 인용하며, “그래서 유언 집행이라도 했다는 건지 뭐 그렇게들 생각하나본데 이것부터 소름돋는다. 학대받다 자살한 사람이 생전에 자신이 받는 학대를 정당화하는 메시지들을 쓴 걸 박제해달라고 부탁했다고 그 부탁만은 들어주다니 어떻게 하면 그 논리가 성립이 되는지...” 라며 그를 공격했다.


고인의 주변인 
‘프로작’의 증언 

‘메루메루’는 세상을 떠나기 전, 본인의 인생 중 사망 직전이 가장 행복했다고 추억하며 지인들에게 자신의 트윗 내용을 아카이브한 트위터 봇 계정을 만들어달라 부탁했다.

• 농담으로 핸드폰을 하루 뺏긴 적이 있다고 말했지만, ‘메루메루’도 업주 남성의 핸드폰을 뺏어 가지고 있던 적이 잦다.

• ‘메루메루’는 행동의 제약 없이 경제활동을 잘 하고 있었으며, 업주 남성은 고인에게 건물 한 채를 명의 이전한 상태였다. 한 마디로 ‘메루메루’는 경제적으로 자유롭고 풍요로웠다.

감금당했다는 것도 사실 무근이다. ‘메루메루’는 사망 1주일 전 서울 소재 친구의 집에서 숙식했으며, 서울과 지방을 매우 자주 왕복했다.


이에 ‘밀사’는 허위사실이 포함된 해당 트윗 타래를 삭제하라고 요청했으나, ‘김밈’은 이를 거절하면서, 오히려 ‘성노동자권리모임 지지’에서 있었던 사건과 본인과 ‘밀사’ 사이의 사적 일화를 거론하며 ‘밀사’를 인신공격하기 시작했다. 해시태그에서 양산된 루머가 ‘김밈’의 가공된 루머와 합쳐져, “‘밀사’가 ‘메루메루’를 죽였다”는 루머는 일반적 여론이자 진실이 되었다. 사람들은 사실관계를 확인하기보다 ‘성노동론에 희생된 피해자 고인’을 동정하며 ‘밀사’와 성노동론을 비난했고, 사이버 불링은 더욱 수위가 높아졌다. “성노동론은 잘못됐다”는 입장을 넘어, “성노동자의 인권을 왜 챙겨줘야 하느냐”, “(그들은) 돈을 쉽게 번다. 돈이 없으면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바보냐”, “누구는 힘들게 일하는데 누구는 매일 명품백을 걸치고” 등의 일반적인 성노동자 혐오 발언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창녀가 여성인권을 끌어내린다”는 저열하고 노골적인 공격마저 만연했다. 해당 공격은 2020년 현재까지 이어지게 되는데, 2020년 2월에는 코로나19 및 확진자 동선 공개 문제와 관련, 성노동자들이 일할 수 없게 된 처지를 조롱하는 게시글에 몇몇 성노동자 당사자가 항의하자, 이를 계기로 또다시 한 차례 불링이 벌어지기도 했다. 

트위터에서 시작된 성노동자들에 대한 불링은 ‘디시인사이드’ 내 ‘국내 야구 갤러리’ 등의 대형 커뮤니티와 다른 SNS에까지 확산되었다. 2018년 6월 5일, 페이스북 페이지 ‘반성착취 여성행동’은 “트위터에서 알려진 ‘메루메루’ 자살 사건 요약”이라는 제목으로 워마드 래디컬 페미니스트 발 루머를 합산하여 게재했다. 이로 인해 페이스북 플랫폼에서도 루머가 생산•유포되어 몇몇 반성매매 활동가에게는 언론사 기자들로부터 인터뷰 요청까지 왔다. 해당 활동가들이 “사실관계를 모르므로 인터뷰에 응할 수 없으며 게재된 내용은 루머니 확산을 하지 말아달라”는 요청을 하여 페이스북에서의 불링은 다소 잦아들게 되었다. 그러나 ‘밀사’ 본인이 직접 페이스북 메시지로 문제제기한 현재까지도, ‘반성착취 여성행동’ 페이지의 게시글은 삭제되지 않고 있다.

 

페이스북 페이지 ‘반성착취 여성행동’의 게시물

 



 5. 고인 주변인들의 증언 

2020년 올해 결국 ‘밀사’는, 본인과 고인 ‘메루메루’의 생전 관계 및 각종 정황들을 공개하고 “2020년 4월 30일까지 가해 내용을 삭제하지 않으면 고소로 강경 대응하겠다”고 선포했다. ‘밀사’가 공개한 고인과의 트위터 다이렉트 메시지에는 ‘밀사’가 고인을 끌어들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였다는, 즉 고인의 제안에 따라 고인 소유 룸의 관리 실장으로 ‘밀사’가 가게 되었다는 정황 증거가 담겨 있었다. 이어 ‘밀사’ 및 고인 ‘메루메루’와 익산의 룸에서 함께 일했던 필자 본인을 비롯해 여러 주변인들이 사실관계를 바로잡으려 애썼다. 그러나 워마드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은 무시로 일관하며 불링 트윗들을 다시 끌어올렸고, 특히 ‘김밈’은 계속해서 밀사를 인신공격하며 심지어 ‘반성매매 진영에서 공식 성명서를 내려다가 피해당사자인 고인을 생각해서 그만두었다’는 허위 사실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밀사’가 공개한 당시 고인과 ‘밀사’의 트위터 다이렉트 메시지 대화의 일부

 


고인의 주변인이자 사이버불링 피해자인 
'밀사’의 증언 

• ‘김밈’은 사실관계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메루메루’는 업주 남성과의 사실혼을 굉장히 주도면밀하고 적극적으로 기획하고 실행했다. 본인은 이 전 과정을 곁에서 지켜봤다. ‘메루메루’를 가련하고 단선적인 그루밍 성폭력 피해자로 프레이밍하는 게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다. ‘메루메루’가 어떻게 실질적인 사실혼과 재산 분배 등을 성사시킬 수 있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고인의 생애사와 그가 가지고 있었던 생존주의, 그리고 그가 생 전반에 걸쳐 가졌던 만성적 피로감 등을 전부 말해야 할 정도로 그의 맥락은 복잡다단하다.

업주와 ‘메루메루’의 관계가 이상적이고 건강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일방향의 가해와 피해로 정리되기는 어렵다. 중장년층 성인 남성과 청년층 성인 여성 간 사실혼 관계라는 비대칭적인 관계 권력의 맥락을 충실히 고려하더라도, 결론적으로 그들의 관계성은 ‘상호 의존 및 착취’에 가까웠다.

고인은 ‘감금’, ‘인지 왜곡’ 등의 표현들과 무관한 나날을 보냈다. 업주 남성이 고인에게 집착했던 건 사실이지만,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하지 않는 업주는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이 지내는 객실에 틀어박혀 있었으며, 고인의 일상에는 감정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거의 개입하지 않았다. 비록 ‘밀사’ 본인은 업소 실장으로서의 일을 하기는 했으나, 워낙 고객이 없고 한산했기에, 실장으로 일했던 두 달의 기간 중 6할은 가게 문을 열어놓은 채 ‘메루메루’와 같이 수다를 떨었다.

카운터는 늘 고인이 지켰는데, 사실 ‘지켰다’는 표현조차 미묘하다. 카운터는 조그만 창문으로 손님과 소통하는 방 형식이었고, ‘메루메루’는 늘 카운터 방을 자기 집, 자신만의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실제로 들어가보면 안이 꽤 넓었고, 부엌도 있었다. ‘메루메루’는 조그만 창문을 통해 손님을 응대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종일 컴퓨터로 트위터하거나, 뭔가 읽는 것에 열중하거나, 모바일 게임을 열심히 하거나 했다. ‘메루메루’도 업주처럼 원체 호더(holder) 기질이 짙어 밖으로 나가는 걸 좋아하지 않아했어서, 카운터 공간에 대한 강한 애착으로 인해 해당 공간을 누구에게도 넘겨주고 싶지 않아했고, 이 모든 맥락이 섞여 밖에 잘 나가지 않았던 것일 뿐, 감금당한 적은 없다.

다만 본인을 포함한 고인의 친구들은 업주 남성과 ‘메루메루’ 사이의 상호 착취적 정서 의존을 상당히 우려스러워했고, 가능한 한 그가 익산을 빠져나오길 원했다. 본인이 익산으로 가기로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메루메루’를 지척에서 케어하고 정서적 자원을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본인이 실장으로 있던 동안 본인의 트위터 계정에 가게에 오라는 트윗을 게시한 것, 즉 구인 트윗을 한 것은 사실이다. 다만 그걸로 정말로 구인이 될 거란 기대는 조금도 하지 않았다. 정말로 구인을 목적한다면, 더 효율적이고 문제의 소지를 일으키지 않으며 편리한, 유흥업소 전용 구직구인 사이트가 이미 즐비하다. 따라서 본인과 관련된 루머 중 하나인 “‘밀사’는 가출 오타쿠 청소년 여성을 그루밍해서 룸으로 들이기를 시도했다”는 주장은, 법적인 차원에서도 개인적인 동기에서도 어불성설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그러한 구인 트윗을 게시한 이유는, 만약, 정말로 익산 근방에 사는 성노동자 당사자인 트위터 유저가 있다면 그들을 만나보고 싶었고, 할 수만 있다면 정말로 서로를 도와가며 같이 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 상당히 놀랍게도 해당 트윗을 보고 정말 면접을 보러 온 분들이 세 분 계셨지만, 죽도록 영업이 안 돼서 허구헌날 한 거라곤 같이 요리한 음식을 먹고, 배달요리를 시켜 먹고, 업장에 쌓인 술을 먹고(많이 먹어서 ‘메루메루’에게 혼나기도 했다) 영업시간 내내 가라오케 틀고 노래했던 것이다. 그래서 내심, 와주신 분들에게, 그래도 돈 벌러 오셨는데 대체 이게 뭔지 싶어 죄송했다.

• 구인 트윗 게재로 당시 친구에게 혼나기도 했다. 룸 구인 트윗을 올린 것 자체가 아니라, ‘밀사’ 계정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책임감을 덜 가졌다는 점에서였다. 그 부분은 지금도 반성하고 있다. 하지만 그 트윗으로 인해 청소년들이 자극되어 성매매에 빠졌다는 말은 농담조차 되지 못한다. 해당 룸의 실장으로 일했던 두 달간 면접을 보러 오신 청소년분은 한 분도 없었다. 화류계 일 자체가 처음이신 분은 한 분 계셨으나, 그 분 역시 일이 없어 놀기만 하고 근무는 전혀 하지 못하셨다.

‘메루메루’가 남성 업주와의 BDSM 플레이로 인해 몸에 멍이 들었으며 약을 뺏겼다는 주장은, 완전한 사실무근은 아니고, 어느 정도는 진실이다. 하지만 고인의 트친과 친구들이 이를 마냥 방관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이토록 길게 온갖 맥락을 구구절절 설명한 이유는 ‘메루메루’를 피해자화의 방식으로 타자화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성노동자 배제적 페미니스트(SWERF : Sex-Worker-Exclusionary Radical Feminist)들의 특징은 시도때도 없이 성노동 경험 당사자를 피해자화하는 건데, 그 목적은 당사자가 겪은 폭력을 섬세하고 첨예하게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라, 본인들의 입맛대로 사례를 조작하고 재단해 착취하기 위함이다. 그렇기 때문에 “‘메루메루’는 학대의 희생자였다, ‘메루메루’는 학대로 인해 정신이 심약해져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그가 발화하는 성노동론이 제대로 된 것이었을 리가 없다.”는 요지로 말을 하는 것이다. 고인 모욕을 하고 있는 것은 과연 누구인가? ‘메루메루’는 바로 그러한, 성노동자 당사자로서의 본인의 맥락을 묵살하고 자신의 경험-피해 서사를 입맛대로 타자화 및 편집, 왜곡하려 드는 인간들과 평생을 싸워왔다.

‘밀사’ 본인은 사실 ‘메루메루’가 본인을 통해 알게 된 성노동론으로 자신의 삶을 그만큼 더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고인은 이런 트윗을 쓴 적이 있다. “성노동이 노동으로 인정되기만 해도(좀 더 가깝게는 ‘네가 하는 것도 노동이네’라고 말해주기만 해도) 많은 (성노동자 당사자의) 죽음을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자꾸 이 내용이 떠오르는 이유는 아마 ‘메루메루’ 또한 그렇게 본인 목숨을 조금이나마 더 이어갔던 사람이란 걸 알아서일 것이다.

공익을 목적으로 폭로를 감행하는 보통의 사람들은 사실관계가 틀렸음을 지적받으면 트윗을 지우고 새로 쓴다. 그러나 ‘김밈’은 틀린 내용을 정정하는 대신 새 트윗을 써서 타래에 붙이는 식으로 수용하는 모양새만 내고 잘못된 정보가 계속 퍼지게 만들고 있다. 이는 “밀사가 오해받아서 계속 힘들어했으면 좋겠다”는 의도가 담긴 행동이다.

• “‘메루메루’는 피해자였다”는 주장 하나에 본인이 분노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그 주장 자체는 사실이기도 할 것이므로, 이 자체에 대해서는 어떠한 감정도 들지 않는다. 본인이 분노하는 이유는, ‘메루메루’ 생전에는 오히려 ‘메루메루’를 부정하고 가해해 왔던 워마드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이, “고인은 피해자이므로 고인이 그동안 했던 모든 발언은 무의미하다”는 식으로, ‘메루메루’ 생전의 삶정치를 전면 부정하며, 지금까지도 본인들의 죄악을 송두리째 부정하며 뻔뻔하게 기만을 저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반성착취와 성노동 운동은 함께 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성노동은 노동이 될 수 없다고 말하는 강경한 입장이더라도 충분한 대화와 토론이 당연히 가능하고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그게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건, 사람들이 그것을 가능케 하는 최소한의 예의조차 성노동자 당사자들에게 갖추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좀 갖춰달라는 말을 이렇게까지 강경하게 구구절절하게 해야만 하는지 솔직히 몹시 얼떨떨하다. 성노동론은 솔직하게, 그간 축적돼 온 인본주의 인권 담론과 노동권 담론을 성노동 부문에 적용한 열화된 복사본일 뿐인데, 그걸 긍정한 당사자라는 이유로 이렇게까지 험한 꼴을 당하는 걸 보면, 역시 사람들은 성노동자-창녀를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틀림없다.


익산 업소에서 '밀사'와 함께 근무한
필자 ‘석영’의 증언 

• 고인과 ‘밀사’의 트위터 다이렉트 메시지 캡처 이미지에도 명시되어 있듯, ‘밀사’는 고인에게 월급제로 고용된 사람이었다.

• 본인 ‘석영’은 ‘밀사’의 구인 공고 트윗을 보고 익산 업소에 간 게 아니라, ‘밀사’가 실장으로 고용되었으며 ‘밀사’를 고용한 고용주가 고인 ‘메루메루’라는 소식을 듣고 가게 되었다. 본인은 고인과도 어느 정도 구면이었다.

• 본인은 총 두 번에 걸쳐서 익산 업소에 가게 되었으며, 머문 기간은 일주일 안팎이었다. 익산에 머물렀던 일주일 안팎의 기간 동안 실제 일을 한 횟수는 두 번, 2-3시간 안팎뿐이었다.

• 본인이 익산에 도착했을 때, 같이 갔던 성노동자 한 명까지 포함하여 일할 사람은 2명뿐이었다. 이에 ‘석영’이 ‘밀사’에게 진담 반 농담 반으로 “트위터에서 구인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이에 밀사가 구인 트윗을 올리게 되었다. 구인 트윗을 보고 성노동자 몇 분이 면접을 보러 오자, 실제로 밀사는 “정말로 면접을 보러 오실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 본인이 당시 익산 업소에서 만난 성노동자들과 대화를 하며 알아낸 바에 따르면, 면접을 보러 온 성노동자들은 이미 성노동 경력을 가진 19세 이상의 성인이었으며, 각자 구인 트윗에 응한 이유가 달리 있었다. 그들은 결과적으로 익산 업소의 운영이 잘 되지 않아 변변한 수입을 얻지 못했음에도, 그 곳에서 그저 서로 이야기하며 노는 것이 즐거웠기에 두어 달 남짓을 출근했다.

• 본인의 경우, 고인보다 고인과 사실혼 관계에 있던, 업장 소유자였던 업주 남성과 이야기를 하며 보낸 시간이 많았다. 내용은 가게(업소), 업소 운영 방법, 돈에 관한 이야기가 주였으며, 대개 사장이 먼저 대화를 요청했다. 그는 룸 업소의 운영 방법을 전혀 몰랐으며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개업을 했다. 익산 업소의 공동 소유주인 고인 역시 가게 운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

• 본인은 이 상황을 답답하게 생각했고, 룸의 관리 직책을 맡은 것이 처음이었던 ‘밀사’가 걱정되었기 때문에 두 번째로 익산에 가기로 결정했고, ‘밀사’가 처음 받기로 약속한 월급이라도 제대로 받길 바라는 마음에서 역할극 등의 방법으로 ‘밀사’와 가게 운영을 연습했다.

• ‘밀사’는 지병으로 인한 요양을 겸하여 익산에 오랫동안 머물렀다.


고인의 주변인 
A의 증언 

• 고인과 사실혼 관계였던 업주 남성은 보유한 부동산이 많았으며, 고인 ‘메루메루’는 그에게서 한남동의 아파트 일부에 대한 권리를 이전받고 트위터 계정에 이를 기록했다.

• 고인은 익산에 거주할 때 모텔 및 룸 업장 관리를 맡았으며, 업장 소유자가 보유한 원룸의 세입자를 구하는 일도 했다.

‘밀사’는 포주가 아니었고, 오히려 고인이 업주 남성과 공동으로 업장의 실소유자였다. ‘밀사’는 익산 업소에서 ‘실장’ 내지 ‘마담’이라고 불리는 관리 직책으로 고용되었다.

당시 고인은 부동산과 사업장 몇 개를 양도받아 운영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딴 법인을 만드는 절차를 진행 중이었다. 예정대로 일이 진행되었다면 법인은 2018년에 만들어졌을 것이다. 또한 세상을 떠나기 바로 전날까지도 본인의 지인을 통해 IT 기술을 배우고 있었으며, 조언을 따라 방송통신대학교 및 독학사로 학위 취득을 위한 공부 역시 병행하는 상태였다.

• 본인은 고인이 ‘밀사’와 서로를 알기 이전부터 고인을 알고 지냈는데, ‘메루메루’가 ‘밀사’를 통해 성노동을 시작한 사실은 없다. ‘밀사’를 만나기 이전부터 고인은 이미 성노동을 하고 있었다.

감금과 단약을 당했다는 내용의 루머와는 달리 고인은 사람들을 만나며 지냈고 서울에 왕래하기도 했으며, 병원도 꼬박꼬박 다녔다.

고인의 삶을 ‘가련하게 착취당한 피해자’로 축소하여 멋대로 왈가왈부하는 것을 그만두길 바란다.


고인의 주변인
B의 증언 

• 본인은 고인이 세상을 떠나기 2주 전부터 고인과 함께 살았고, 고인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도 곁에 있었으며 이는 경찰 조서에도 모두 적혀 있다.

고인은 본인을 픽업하기 위해 서울까지 왕복하고 필요에 따라 경제 활동 역시 원활하게 했으며, 운용할 수 있는 자금이 늘 넉넉히 있었다. 본인이 익산에 도착하자마자 고인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본인을 병원에 데리고 가는 것이었다.

고인이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신경정신과 약물을 처방받았기에, B본인은 업주 남성과 약을 끊겠다는 약속이 오갔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고인의 생활 전반은 자유로웠고 외부로부터의 억압은 없었다. 깨어있는 시간에는 공부, 요리 등을 하거나 본인과 놀았다.

• 고인은 그 즈음 즉 2018년 3-4월 당시 시점에서는 ‘밀사’와 경제적 교류가 전혀 없었으며, 고인이 운영하고 ‘밀사’가 일했던 익산 룸은 폐쇄된 상태였다.

고인의 선택은 고인의 것이다. 주변인으로서 사망을 막지 못한 건 굉장히 슬프고 통탄스럽지만 고인과 연관성이 없는 제3자가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건 정말 모독적인 일이다.


 


 

 7. 고인과 밀사의 주변인들의 증언 이후 

지금까지, 고인의 기일인 2018년 4월 2일 전후부터 2020년 4월 현재까지 사건들의 사실관계 전반을 기술했다. ‘폭로’라고 표현했지만, 이것은 그저 건조한 사실 서술에 불과하다. 그야말로 고인의 주변인들이 불링 가해에 맞서야만 했던 시간들을 증언과 맥락을 뒷받침해 풀어 써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이 ‘폭로’로 기능한다면, 그것은 그만큼 이들이 당해온 일들이 너무도 지난하고 악독하기 때문이리라. 나는 이 기나긴 글로도 고인 ‘메루메루’, ‘밀사’를 포함한 고인의 긴밀한 주변인이자 자살 생존자들, 코앞에서 일어나는 이 모든 일들을 그저 견디고 견뎌야만 했을 성노동론을 지지하는 성노동자 당사자들의 고통은 조금도 표현되지 못했다고 느낀다. 그것이 속상하고, 아쉽고, 안타깝다.

‘증명’은 많은 경우 피해당사자의 몫이 된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설명하고, 피해 사실의 증거를 제시하고, 가해자나 제3자를 납득시키기를 요구받는 것은 언제나 피해당사자이다. 가해자의 몫은 흔히 가해한 적 없다며 부인하고, 그 일들이 정말 거짓이 아닌지 증거를 들어 제대로 증명해보라고 조롱하고, 신빙성 높은 증거와 증언을 가져와도 그것을 무화하고 묵살하며 가해를 정당화시키려 드는 것이다. 으레 그러했다.

‘사이버불링’은 온라인이라서 존재할 수 있는 특수한 개념이자 현상이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일어난 일’ 정도로 가볍게 치부될 수도 있다. ‘악플’ 또한 마찬가지다. 온라인 사회는 오프라인과는 다르게 텍스트나 사진으로 형태를 이루고 있어, 해당 텍스트나 사진 뒤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느끼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사이버불링이나 악플 등으로 괴로워했던 사람들, 급기야 그것이 유일한 이유는 아니라도 중요한 이유가 되어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얼굴이나 이름을 우리는 여럿 떠올릴 수 있다. 온라인에서 루머를 유포하거나 대상을 비난(비판이 아니다)할 이유를 정당화하는 것은, 오프라인에서 이간질을 하거나 (헛)소문을 퍼뜨리는 것과 장소와 형태만 다를 뿐 같은 일이다. 그 사람이 볼 수 있는 곳이든 아니든,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보라고’ 대놓고든 뒤에서든, 상대가 보기를 바라서든 아니면 같이 물어뜯을 다른 사람들을 늘리기 위해서든. 말이 입에서 입을 건너면, 그러한 사이버불링 혹은 악플의 기저에 있는 악의는 가려진다. 심지어 그것이 사이버불링 혹은 악플이라는 인식조차도 지워져버린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별다른 의심 없이, 사실 관계를 확인하거나 비판적으로 내용을 따져보지 않고 그 말을 수용하고 퍼뜨리면서 가해에 동참하게 된다. 우리는 이런 사건들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생각해보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보아야 한다.

사이버불링이 어떤 행위인지 인지한 다음에는, 이 사건에서 사이버불링에 사용된 소재들과 서사를 되짚어봐야 한다. 여기서 사이버 불링의 대상이 된 것은 성노동론이라는 이론, 또는 성노동론을 지지하고 언급하는 성노동자 당사자나 성노동 운동에 참여한 이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성노동론을 지지하기 때문에 사이버불링을 당한 것인지, 아니면 성노동자 당사자이기 때문에 사이버불링을 당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둘 중 어느 쪽이든 이러한 불링에서 정당한 명분과 당위를 찾을 수 없음은 확실하다.


워마드 래디컬 페미니스트 집단은, “성착취 폭력을 노동이라는 단어로 교묘하게 혼동시키는 ‘포주 이론’인 ‘성노동론’에 ‘뇌가 절여져서’ 성매매 경험 당사자가 자신의 피해를 노동으로 합리화하는 위험한 상황이 초래될 수 있기에, 그런 가능성 자체가 성노동론의 해악이며, 성노동론은 페미니즘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무리하게 관철시키기 위해, 고인의 의도와 고인 주변인들의 증언들을 무시한 채, 고인의 삶을 왜곡하여 유포하는 것은 물론, 고인 주변인을 향한 악의적인 인신공격까지 저질렀다. “성노동론이 여성들에게 해악을 끼치고 있기에 학계에도 들어와서는 안 되며, 성노동론은 페미니즘이 아니고, 사라져야 한다”는 주장을 위해, 여러 차례 사실과 다른 기록까지 쓰고 퍼뜨리며, 고인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진지하게 숙고하고 견지하며 주장했던 견해를 철저히 무시하고 고인의 의도까지 곡해했다. 고인이 “성노동이 노동으로 인정받길 바랐던 성노동자 당사자”였다는 사실을, 오히려 고인의 견해와 의도를 무시할 수 있는 근거로 멋대로 편집하는 순환 논리다. 인간의 의지, 개인의 판단을 기만하고 묵살하는 것이 페미니즘적 실천인가?

이 글의 맨 처음으로 돌아가, 아이돌 걸그룹 ‘허니팝콘’의 데뷔 논란을 떠올려보자. 트위터뿐만 아니라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까지 이들의 데뷔와 활동을 허용하지 말아달라는 청원이 올라올 정도로 이 논란은 컸다. 앞서 서술했듯, 해당 걸그룹엔 일본에서 AV 배우로 활동했던 멤버들이 포함돼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AV 활동 이력이 있는 멤버가 없었다면? ‘한국에서는 포르노가, 성매매가 불법이라’, ‘성매매의 인식이 가벼워질 수 있어서’, ‘성매매를 한 사람이 연예인이라는 모종의 공인처럼 되는 것이 유해해서’, ‘타국에서 AV 배우 활동 이력이 있는 사람이 한국에서 아이돌 걸그룹으로 데뷔함으로써 기존에 활동하던 아이돌에게까지 피해를 끼치기 때문에’ 등의 이유로 데뷔와 활동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할 수 있었을까? 그것이 과연 합리적인 주장일까? AV 활동 이력이 있는 멤버가 없었다면, 아마 ‘허니팝콘’의 데뷔는 ‘일본 아이돌이 한국 k-pop이 좋아서, 한국에서 활동하고 싶어서 데뷔를 했나 보다’ 정도로 받아들여졌을 것이고, 논란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이돌 걸그룹의 데뷔가 아니더라도 ‘대중’ 등으로 일컬을 수 있을 만한 집단 앞에 나서고 보여지는 직업인이 사실 성노동자 당사자였던 사람이었다고 ’알려지면‘, 어떤 ’논란‘이 일지 상상해본 적 있는가? 성노동자 당사자 혹은 과거 당사자였던 사람이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에게 성노동 경험 당사자였음이 ’알려지면‘, 알려지기 이전과 그 사람의 인간 관계와 일상이, 그 이후에는 어떻게 달라질까?

어떤 특성, 부분이 대상화되어 (소수자) 집단이 불이익, 차별, 배제를 겪는 것이 혐오다. 이를 인식하는 소수자는, 불이익, 차별, 배제를 피하기 위해, 드러내야 할 이유가 없다면 가급적 자신의 소수자성을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 자신이 성노동자 당사자였음을 알리는 일을 지칭하는 “화밍아웃”이라는 표현은, 성노동자 당사자들이 혐오 앞에서 생존을 위해 숨어버릴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방증한다. 이 설명이 체계적이고 명료하지는 않을지언정, ‘성매매/노동 경험’에 대한 사회와 사람들의 인식이 어떤지, 페미니즘 이론의 언어를 많이 빌리지 않아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다.

 

많은 사람들, 특히 성노동 비당사자가 인식하는 성노동자는 어떤가. 쉽게 번 돈으로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고 명품을 산다든지, ‘불법으로 많은 돈을 벌면서 세금을 내지 않는다’든지, ‘비윤리적이다’라는 등의 노골적이고 일차원적이며 천편일률적인 비방이 대다수다. 즉 성노동에 대한 대중 전반의 인식은 돈을 쉽게 벌 수 있는 것, 불법인 것, 더러운 것 정도로 압축된다. ‘더럽다‘는 라벨링은 혐오 표현이나 가해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프레임 중에서도 공통적이고 대표적인 것이다. 이러한 모멸적인 표현을 정당화할 근거로 사람들은 흔히 성병을 든다. 그러나 성병이나 스텔싱, 각종 폭력에서 가장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성노동자 당사자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공격과 혐오의 타겟이 된다. 심지어 이를 지칭하는 표현이 따로 존재할 정도며, 이 때 질병과 질환자 혐오의 맥락이 추가되기도 한다. 구매자/착취자에 위치하는 사람을 비난하다가도, 이내 성노동자가 대화 속으로 호출되어 원흉으로 취급되기 일쑤다.


가장이 되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돈을 벌어 부양하며 희생한다거나, 빚 같은 경제적 문제가 있다거나, 가정 폭력에서 탈출했다거나 따위의 사정을 듣고 ‘성노동을 할 만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되면, 즉 성노동자 당사자의 존재를 '용납'하고 '참작'해줄만한 ‘선해 가능한 서사’가 뒷받침되면, 혐오로부터 제외될 수는 있다. ‘성/몸을 팔면 안 된다’는 암묵적이지만 공고하게, 누가 정했는지는 모르지만 이미 절대 도덕 · 윤리처럼 여겨져 버린 것을 깨버릴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이유. 하지만 여기에는 명확한 기준이 없고, 모든 조건은 모호하다. 사실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성노동 경험 당사자가 아닌 타인이 당사자의 삶을 듣고 보고 판단해도 된다는 인식, 저울질하여 비난하거나 용납해 줄 권리가 있다는 인식, 인간에 대한 존중이 전혀 없는 태도 자체가 혐오이기 때문이다. 일차원적 대상화와 멸시가 만연하고, 그 원인이자 결과물로써 공격을 위한 혐오 표현 여럿이 존재하고 쓰이는 것, 그러나 다수자가 사정에 따라 참작해줄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명백한 차별과 혐오다. 이 혐오에서는 당사자 본인도 자유롭지 못한 경우가 많다. 만연하고 팽배하고 매우 굳건한 사회의 혐오 인식을 당사자가 내면화하게 될 수 있고, 이것이 내면화된 상태에서 매매/노동을 할 수도 있다. 때문에 성노동자들은 현장에서의 구매자, 관리자, 같은 당사자와 마주치며 수많은 혐오들을 마주한다.

 

페미니스트라는 이들 또한 마찬가지다. 유독 성노동/매매 경험 당사자에게는 “혐오하는 것이 뭐가 어때서?", 당연하다” “욕 들어도 싸다, 마땅하다”고들 한다. 무엇이 옳은지, 인권, 문제/윤리 의식, 타당성 따위는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누구든 인간답게 살기 위한 고민과 실천의 결과가 차별과 멸시와 비방을 정당화할 뿐 현실을 전혀 변화시킬 수 없다면, 심지어 차별을 인식할 수조차 없고 무시하다 못해 정당화하기까지 한다면, 그런 페미니즘에는 대체 어떤 효용이나 의의가 있는가? 이들은 심지어 자원 부족이든 사건 때문이든 사라진 지 몇 년이 지난 단체의 사건과 관련인들을 언급하며, ‘성노동론과 포주가 연결되어있을 수도 있다’는 상상도 못한 음모론까지 펼친다. ‘성노동론이 논점을 흐리게 만든다’, ‘논의가 빙글빙글 돈다’고 비난하면서, ”성노동론이 ’창녀 혐오하지 마라‘에서 진척된 것이 있었느냐?“고 묻는다. 과연 누가 논의를 빙글빙글 돌게 만드는가?

이 사건들을 관통하는 핵심은 의심할 여지 없이 ’창녀/성노동자 혐오‘다. 창녀/성노동자 혐오와 그 원인은 성노동론이 지적하고 비판하는 주된 대상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낙인은 아직까지도 해소되었다 보기 어렵다. 그래서 논의가 빙글빙글 돌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성노동/매매 여성의 인권을 주제로 하면서 막상 성노동자 당사자가 당사자로서 말하는 것을 무시하고, 성매매 피해 여성을 타자화하는 동시에 성노동이 노동임을 부정함으로써 성노동/매매 당사자는 피해자 아니면 부역자로 나뉘게 되는 이분법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는 반성매매 진영과 성노동 진영이 서로 대립하기만 하면서, 논의를 진척시키지 못한 채 추진력을 잃어버리고 고착화된 원인 중 하나기도 하다. 창녀/성노동자 혐오는 글자 그대로 성녀/창녀 이분법을 페미니즘 내부에서 재현한다. 성노동/매매 여성을 차별하는 사람이 없었다면 성노동론을 지지하는 당사자들이 불링을 겪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 사건이 아니더라도, 본디 ’창녀/성노동자 혐오‘는 적지 않은 맥락들이 얽힌 복잡한 주제다. 여기서 무엇이 원인이 되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그 기제와 영향들을 명료하게 규명하고 정의내리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이상적인 전제지만, 성노동/반성매매 이론이 아니어도 이것을 해낼 수 있는 다른 대안이 있었다면 현재의 페미니스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성노동자 배제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성매매특별법 이후 성매매-피해 여성의 인권에 관한 담론을 주도하고 피해자를 지원해온 반성매매 진영이 젠더 권력에 의한 피해/착취 측면을 주로 조명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번 일에서 ”진영 논리를 위해 시체팔이를 하고있으며, 땔감으로 쓴다“는 말을 수도 없이 보게 됐다. 고인과 일면식도 없는 자들이, 고인이 세상을 떠났을 때 조롱하던 자들이, 고인의 주변인들에게 ”부조금은 냈냐“고 이죽거리던 자들이, 고인과 고인의 개구쟁이 같고 유쾌한 성격과 면모를 기리며 고인의 닉네임과 소개말로 만든 문장을 읊은 것을 두고 추모가 아니라 모욕이라며 악의로 비난하고, 반성매매를 표방하면서 고인의 이야기를 허위 내용/루머로 편집하여 진영 논리로 끌고 가고, 고인이 표방했던 신념을 곡해하고 멋대로 그것이 고인이 세상을 떠난 이유라고 주장했던 자들이 그런 말을 했다. 사건의 흐름과 기록들을 되짚으며 생각하고 또 글을 쓰면서 분노치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이 부분에서 사건들과 고인을 언급하게 되는 이상 ‘고인을 멋대로 해석하고 편집한다’는 비판에서 아예 자유로울 수는 없음을, 불가피하게 취사 선택과 강조가 들어갈 수밖에 없었음을 인지하며 또 시인한다. 고인을 겨우 두 번 만나본, 교류가 적었던 먼 지인으로서 사건의 디테일을 밝히며 자신의 정치적인 입장을 발언해야 하는 상황이 몹시 무겁다. 개인의 죽음을 왜곡시켜 논의를 진영 논리로 탈바꿈시킨 자들이 아니었다면 이런 글을 쓸 일은 없었을 것이다.

사건의 진행 과정 전체가 아수라장이었기 때문에 이 글을 쓰는 것은 몹시 힘든 작업이었고, 그저 일상을 잘 챙기며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고 싶었기에 다시는 성매매/노동 진영 관련 활동도 언급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 사건이 ’성매매/성노동‘과 ’피해 및 착취/노동‘으로, ’반성매매론/성노동론‘으로 쟁점이 옮겨진 이상,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전 성노동 활동가이자 성매매 피해 여성으로, 정부의 자립 및 자활 지원을 받아야만 하기도 했고, 성노동에 대한 긍정만이 아니라 피해와 착취를 이야기하고 싶기도 하다. 어느 한 진영이나 이론 내에서 한정된 측면만을 언급하게 되는 활동이나 정치는 어느 순간부터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나의 성노동/매매 경험에는 노동성과 피해, 착취가 혼재되어 있거나 경계가 희미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궁극적으로 (생계수단으로써의) 성노동/매매를 할 필요나 이유가 없는 세상을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성노동은 노동이어야 한다‘는 고인의 견해에 동의한다. 여기에 다 못 담은 견해는 또 다른 글로 이어나갈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고인, 고인의 이야기, 의도, 신념이 곡해된 부분들을 바로 잡고 ’성노동이 노동‘이라는 명제를 수호하고자 했던 고인의 뜻을 계승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