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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루메루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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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권 막 그런 건 아니지만'에서 말하는 '운동권 막 그런 거'가 하는 이야기 '운동권 막 그런 건 아니지만'에서 말하는 '운동권 막 그런 거'가 하는 이야기 미래 나는 2009년에 대학에 들어갔다. ‘이명박근혜’ 정권의 2년 차였다. 내 기억이 맞다면 아마도 그즈음부터 죽음이 흔해졌다. 입학 첫해에 처음 배운 83학번 김세진, 이재호는 전방입소 거부시위 중에 ‘반전반핵 양키고홈’을 외치며 분신했다. 김세진 선배가 칸트를 그렇게 좋아했다지. 하늘 높이 뜬 별처럼 빛나는 그들의 일기며 서간문들을 뜨겁게 고양된 목소리로 선배들과 함께 읽었다. 삼성전자서비스노조 조합원 최종범은 평범하고 성실한 남편이자 아빠였다. 그는 2013년에 단체 카카오톡방에 ‘삼성 다니면서 너무 배고프고 힘들었다, 그래서 전태일 님처럼 그러진 못해도 선택했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우리는 그의 동료 조합원에..
저열한 개인들의 집단 괴롭힘이야말로 페미니즘 부흥의 가장 큰 적이다 저열한 개인들의 집단 괴롭힘이야말로 페미니즘 부흥의 가장 큰 적이다 개저씨슬레이어 나는 ‘메루메루’라는 분을 모른다. 나중에 그분의 예전 아이디였던 ‘우중우중’이라는 닉네임과 프사를 보았을 때엔 예전에 마주쳤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르기는 했지만, 어떤 분이었는지는 정말 기억나지 않는다. 잠깐의 기간이나마 서로 트친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언젠가 그분의 주장에 동의하면서 그분의 트윗을 리트윗한 적이 있었던 것도 같고, 혹은 키배를 뜬 적이 있었으려나… 하지만 잘은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그분을 알게 된 것은 그분이 돌아가시고 나서였다. 그분의 사망 소식을 알고 나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가수 설리 씨나 구하라 씨의 소식을 들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눈물이 나거나 할 정도로 격한 감정은 아니지만, 가슴..
어느 한 밀레니얼의 기고문 어느 한 밀레니얼의 기고문 샤제 0. 나는 어렸을 때부터 비규범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이다. 이런 부류의 삶은 평소 적당히 무해한 척하는 가면무도회의 애티튜드를 놓아버리거나 가장假裝에 실패하는 순간 끝장나 버린다는 사실을 잘 안다. 나는 사회성이라는 것을 유지하기 위해 나의 한정된 두뇌 용량을 적잖게 소모해야만 했고, 매사 너무나 조심스러웠다. 비굴하게도 나는, 당당하게 싸워버리는 대신 꽤나 몸을 사리며 내게 주어진 대학 생활을 견디려 했다. 이미 고등학생 때 죽을 각오로 싸웠고, 그로 인해 가장 확실한 케어를 받았어야 했을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을 외려 지옥처럼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보존을 도모하고 싶었다. 사실 대학에 와서도 래디컬 페미들이나 남페미들과 입씨름은 했으니 완전히 정치적 무해함을..
나의 A들에게 나의 A들에게 단도 간혹가다 인간의 배에서 인간이 아닌 게 태어나는 시대가 있었습니다. 여기도 한 친구가 있습니다. 이름을 주지 않는 것은 너무하니 A라고 부르도록 합시다. A에게는 작은 고민이 있습니다. 손가락 사이사이에 물갈퀴가 자라나고 있었거든요. 아니면 갖고 태어난 것이었던가, 하여간 중요하지 않습니다. 물갈퀴 정도는 넘어가 줄 수 있습니다. 문득문득 A를 볼 때 얘네 애비가 물고기에 대고 수음을 하는 장면이 상상됐지만 넘어갑시다, 얘만 물갈퀴가 있는 건 아니니까요. 이런 건 장갑을 끼면 눈에 띄지도 않고요. 그렇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A의 피부가 파열되어 진피가 결결이 드러나 뻐끔거리고 눈구멍 위를 흰 막이 과육처럼 덮기 시작하자, 그가 천천히 물고기 사체의 냄새를 풍기기 시작하자 조금이..
장례식을 지켜보며 장례식을 지켜보며 겨울나무 분명하게 말하지만, 난 고인과 어떠한 인연이나 기억이 없으며, 그의 삶의 궤적과 흔적에 대해 명확하게 알지도 못한다. 다만 그가 남긴 생전의 기록과 그 주변인들의 증언으로 그의 언어를 접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기고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단 하나다. 여성주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그것도 아주 가볍게 행해지는 이 거대한 장례식이 내게는 너무 무거웠기 때문이다. 내가 목격한 건 고인의 장례식이 아니다. 고인의 기일, 고인에게 조의를 표하는 #메루메루빔과 그를 추모하는 주변인들의 모습을 3년째 봐왔지만, 이를 목격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지난 3년간 지켜보았다고 똑똑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어느 인간성의 종말뿐이다. 내가 목격한 것은 스스로 여성주의자라고 말하..
생존 너머까지 살아가기 위해서 생존 너머까지 살아가기 위해서 김부갹 트위터를 하지 않았을 때부터 밀사를 알고 있었다. 처음 접한 건 다음 카페 여초 커뮤니티의 한 게시글에서였고, 내 주변에 페미니즘을 긍정하는 사람들이―그것도 적지 않은 인원이― 밀사-성노동자-성노동론-메루메루 등에 대해 토론의 장(?)을 여는 것을 보기도 했다. 그 당시 나는 성노동자였다. 그리고 당연히 그 토론에서 당사자성을 밝힐 기회도, 생각도 없었다. 그저 침묵했다. 그곳엔 창백한 주검 메루메루와 여자를 죽인 마녀 밀사만 있었다. 밀사는 비난을 받았고 메루는 동정을 받았다. 밀사-메루는 그렇게 창녀이자 마녀로, 창녀이자 성녀로 각자 혐오당하고 있었다. 자매애로 모든 여성들을 포용(하는 척)하느라 지친 그들에게, 메루와 밀사 둘은 아마 오아시스 같은 존재가 아니었..
당신들이 무서워서 숨어있습니다 당신들이 무서워서 숨어있습니다 녜녕 저는 녜녕이라는 이름으로 17-18년도에 활동했던 성노동 운동가입니다. 왜 과거형이냐면, 지금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 저는 당신들이 무서워서 숨어있습니다. 최소한의 발언, 최소한의 연대, 제가 했던 활동 기록을 남기는 것이 전부입니다. 왜 그렇게 무섭냐고요, 저는 메루메루 님처럼 죽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밀사 님처럼 친구를 추모하다 인터넷의 웃음거리가 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주변에서 말하길, 저는 겁이 없는 사람입니다. 저는 성노동을 하며 많은 폭력 상황에 노출되었지만, 그 속에서 겁먹은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요. 저는 그런 피해 사실을 농담 삼아 모험담처럼 늘어놓기도 합니다. 그런 제가, 당신들에게는 겁을 먹었습니다. 정말로, 당신들 집단의 악..
and always will until the end and always will until the end 다연 메루는 내게 귀여운 사람은 귀여운 사람을 알아본다고 해주었다. 서로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알려주었다. 궁금한 사안이 있을 때 종종 메루가 했던 말들을 찾아봤다. 딱 그정도로 교류했던 트위터 친구였다. 동갑내기기도 하고,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는 귀여운 사람이었으니까 언젠간 친해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막연히 이다음이 항상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지. 메루는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내가 본 메루는 사람을 미워한다고 해놓고 사람을 누구보다 사랑할 줄 알았다. ‘세상에는 흔하고 천한 일들이 가득하다’고 믿고 말하면서도 감각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비아냥대는 걸 좋아하고, 과격하게 말하고, 가끔 무모해보이기도 했지만, 메루는 어쨌든 나아가는 사람으로 보..
서랍에서 기억 꺼내어 두기 서랍에서 기억 꺼내어 두기 익명 A 나는 내 생각밖에 없다.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건 나뿐이다. 그래서 이 글들에도 내 얘기밖에 없다. 이런 내 자폐적인 상태가 최근 걱정되어 이것저것 찾아봤는데 나르시시스트(시가 두 번 들어감)일 수 있을 것 같다. 왜 그런지 생각해 봤는데, 어릴 적에 너무 눈치 없고 싸가지 없게 굴어서 친구들에게 인기 없는 편이었다. 그때의 경험이 날 이렇게 만든 것 같다. 중3 때가 되어서는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를 만들었지만 그때까지 반 안에서 내 위치는 불안정했다. 나와 친구들이 그림쟁이였고, 같이 놀던 남자애들도 오타쿠여서 더 그랬다. 그래서 조바심이 많아졌고 웹툰들도 더 많이 보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 가장 재밌게 보던 작품이 미지의 세계였고 난 작가가 운영하는 사이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