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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기고문

저열한 개인들의 집단 괴롭힘이야말로 페미니즘 부흥의 가장 큰 적이다

저열한 개인들의 집단 괴롭힘이야말로 페미니즘 부흥의 가장 큰 적이다
개저씨슬레이어

 

 


나는 ‘메루메루’라는 분을 모른다. 나중에 그분의 예전 아이디였던 ‘우중우중’이라는 닉네임과 프사를 보았을 때엔 예전에 마주쳤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르기는 했지만, 어떤 분이었는지는 정말 기억나지 않는다. 잠깐의 기간이나마 서로 트친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언젠가 그분의 주장에 동의하면서 그분의 트윗을 리트윗한 적이 있었던 것도 같고, 혹은 키배를 뜬 적이 있었으려나… 하지만 잘은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그분을 알게 된 것은 그분이 돌아가시고 나서였다. 그분의 사망 소식을 알고 나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가수 설리 씨나 구하라 씨의 소식을 들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눈물이 나거나 할 정도로 격한 감정은 아니지만, 가슴이 찌르르하고 답답한 감정이 계속되었다. 몇 달 동안, 몇 년 동안. 아니 지금도 계속. 이런 감정을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부채감? 뭐 그런 것일 테다. 안타까웠다.

그런데 밀사 님은 예전부터 확실히 누군지 알았다. 대화해본 적도 있었던 것 같고… 그분과 처음 대화를 나누어본 것은 2012년도, 혹은 그 이전, 딱히 ‘페미니즘’이라든가 ‘페미니스트’ 같은 단어가 무슨 뜻인지도 몰랐을 때다. 트친들과 성매매에 관련된 이야기를 했는데, 성노동론자 분들이 특정 단어를 검색해서 먼저 말을 걸어오셔서 정치적 입장 차이가 있는 부분에 대해서 토론했던 것 같다. 나는 그 이슈에 대해서 어느 정도 정치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었고, 대화가 이어질수록 성노동론자들의 정치적인 주장에서 모순이 있다고 느껴지는 부분들이 계속 나타났지만, 그냥 넘어갔다. 더 이상 서로를 설득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고, 무엇보다 성노동 당사자인 상대방을 너무 몰아붙이는 것은 무례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나중에 밀사 님과 그 주변 트친분들의 트위터를 가끔 마주치게 되는 일도 있었지만, 그분들의 일상이나 대화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사진이나 셀카로 보이는 그분들의 일상은 그저 초라해 보였고, 그분들이 사용하는 단어는 너무 현학적이었다. 이른바 ‘꿘’ 혹은 ‘좌좀’들이 많이 쓰는 그런 류의 단어들이었다. 어쨌든 나하고는 잘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시쳇말로 ‘모니터 뒤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시간이 많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누군가의 일상을 ‘초라하다’고 평가하던 나 자신이야말로 속물적이고 지루한 소비자 새끼들 중 하나였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 그들이 사용하던 단어나 어법이 어떤 이유에서 나온 것인지도 지금은 이해한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밀사 님과 잠깐이나마 실제로 친구였던 트친이 있었다. 그 트친은 메루님의 죽음이 밀사 님의 무책임한 행동들과 성노동론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정말로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떤 사람들은 밀사 님의 정치적인 행보에 대해서 나름 그럴듯한 비판을 하기도 했다. 몇 가지 이성적인 비판인 척하는 말들을 시작으로, 밀사라는 사람은 세상에 둘도 없는 끔찍한 괴물로 규정되었다. 어떤 일을 당해도 ‘그래도 싼’ 여자로 취급되었다. 트위터의 많은 사람들은 심심하면 밀사 님의 외모를 조롱하거나 팻셰이밍을 해댔으며, 성매매라는 단어에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환상과 공포를 쏟아부으며 밀사 님을 괴롭혔다.

그것은 밀사 님의 정치적인 행보에 대한 발전적인 비판이 아니라, 그냥 자기가 가지고 있는 공포를 밀사라는 한 개인에게 투사한 뒤 그 대상을 짓밟고 모욕함으로써 공포를 이겨내려 드는 일종의 주술적인 행위였다. 

어쩜 자기들이 저지르는 추잡한 행동들에 대해 자기객관화가 저렇게 안 될 수가 있는지? 자기가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는 만만한 상대 앞에서라면 얼마든지 ‘빤쓰를 내릴’ 수가 있는 건가? 자신들의 근원적인 공포와 혐오감(둘은 여러 가지 의미로 맞닿아 있다)이 일말의 도덕적인 정당성을 띠고 있다는 망상과 자신의 추태와 가해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리라는 확신이 합쳐져서, 수많은 페미니스트 여성들이 인터넷으로 밀사를 ‘이지메’하며 자신의 가장 어리석고 멍청한 본성을 앞다투어 드러내는 결과를 낳았다. 저 비겁하고 역겨운 존재들의 실체를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만으로 까발린다는 점에서 밀사는 참으로 기이한 힘을 가진 인물이다.

밀사 님에겐 왕따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로 평생을 그런 사고방식에 매여 살아가는 중고등학생 시절 급식 카스트의 밑바닥층이었던 이들의 본능을 자극하는 면모가 여럿 있다.

예를 들어 성매매를 하면 강간이나 폭행으로 징벌당할 것이라는 공포. 성매매하는 여성을 징벌하는 주체는 당연히 여성혐오-가부장제 사회 그 자체인데, 이들은 입으로는 늘 ‘가부장제 타파’를 외치면서도 ‘성매매를 하는 나쁜 년’들을 보면 갑자기 가부장제의 규칙 수호자가 되어 그들을 단죄하기 시작한다. 그 기저에는 ‘성매매를 하면 징벌당해야 하는데 왜 징벌 안 당해? 나라도 성매매하는 더러운 년들을 징벌해야지’라는 심리가 깔려 있다. 물론 이들이 모든 성매매 여성을 징벌하려 드는 건 아니고, 성매매가 얼마나 자기 자신을 망가뜨렸는지에 대해 줄줄 늘어놓으며 진심으로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는 여자들에게는 동정을 보이기도 한다. 여기에 당사자의 심신에 이런 태도가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응 나 돈 받고 섹스하는데 어쩌라고”라는 식으로 나오는 것이 오히려 존엄을 더 지켜주지 않을지 같은 고민은 일절 없다. 그저 나쁜 선택을 한 여자가 순순히 고통받고 공손히 반성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는 것, (나쁜 선택을 한 여자가 아닌) 나의 kibun을 낫게 해주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다. 이마저도 해당 여성이 생계를 이을 다른 수단이 없어 성매매로 돌아가거나 하면 다시 비난하고 괴롭히기 일쑤다.

아니, 저들은 사실 인터넷이든 어떤 공간에서든 여자가 감히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 자체를 이미 징벌해야 할 행동으로 규정한다. 그래서 자기가 페미니스트네 어쩌네 하는 여자들이 남의 셀카를 가져다가 팻셰이밍을 하고, 조롱하지 말라고 하면 “그럼 셀카를 올리지 말든가?” 같은 대꾸를 해대는 것이다…

 

 

밀사와 관련된 허위 사실을 유포한 계정과의 메시지 중 일부. 당신의 가해로 인해 밀사가 셀카 조롱까지 당하고 있다고 이야기하자 "셀카는 밀사가 올렸습니다"라고 대꾸하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저들이 ‘성매매를 한 나쁜 여자들을 징벌하는 것’에 저렇게 환장하는 이유가 스스로 성매매에 대한 유혹을 상당히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기들도 성매매하고 싶은데 무서우니까 자기들의 성매매 욕구를 다스리는 주문으로 [성매매하면 강간당하고 폭행당하고 비참하게 죽는다]라는 명제를 염불처럼 외고 사는데, 그런 명제에서 벗어나는 샘플이 나오니까 분노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매매를 해서 자신이 받았던 고통을 증언하고 간악했던 과거의 자기 자신에 대해 머리를 조아리며 반성하는 여자’의 존재가, 자신들의 그런 욕구를 다스리는 데 너무나도 필요하기 때문에, 없으면 만들어내기라도 하는 것이다. (비성노동자 여성이 자신을 탈성매매 여성으로 소개하며 성노동론과 장미계를 비난하는 계정을 운영했다가 거짓이 탄로나자 황급하게 계정을 삭제했던 사건이 있었다. '레이라' 사건을 참조하시라.)

생존이 어렵고 노동이 힘들수록 상대적으로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성판매에 대한 욕망도 커질 수밖에 없는데, 가부장제의 터부라든가 나이, 외모, 사회성, 정신력 등의 생득적 자원, 그 외 기타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보고 수지가 안 맞아 성노동은 포기했지만 그래도 뭔가 미련이 찌꺼기처럼 남아서 성판매를 하는 여성들에게 원념을 품고 해코지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내 추측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왜 저렇게 성판매 여성들을 기를 쓰고 괴롭히는가, 성판매 여성들에게 왜 저렇게 집착하는가 하는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

사실 이 정도로 진득진득하고 추잡한 감정들은 그냥 건드리기가 싫고 무섭다. 왜냐면 너무 징그럽고 더러우니까… 길 가다가 누가 토해놓은 거 보고 막 쑤시고 그러지는 않잖아… 비슷한 일이다. 그걸 더 들여다봤자 비루한 인간들의 비루한 인생과 미성숙한 정념들 말고 뭐가 더 보일 것 같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를 넘은 불링을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다. 사이버 불링 가해자들 쟤들이 왜 저러는지도 좀 알겠고 그냥 역겹고 불쌍하고 징그러울 뿐인데, 아무리 본인들이 그렇다고 한들 집단으로 몰려가서 만만한 여자 하나를 붙잡아 막 괴롭히고 그러면 되는가?

어떤 디나이얼 게이 남성들이 자신의 성 지향성을 온몸으로 드러내는 (숨기지도 못하는) 어떤 게이를 보고 집단적으로 괴롭히면 말려야 하고, 그런 짓거리를 하지 못하게 할 법적인 근거도 있어야 한다고 지금까지 주장해 오지 않았나? 근데 왜 똑같은 상황인데 피해자가 여성인 경우에는 침묵하고 눈 감고 모른 척하는 것인지? 그런 행위는 피해자가 누구이든 간에 용납되어서는 안 되고, 그건 가해자를 향해 그만하라고 피해자 옆에 서서 같이 외쳐야 한다는 뜻이다. 우선 그런 저질스러운 행위를 배제해야 다양한 상황과 입장들 간의 동등한 토론이나 건전한 비판이 가능하다.

나는 성노동론을 비판하고 싶고, 성노동론자들과 발전적인 논쟁을 할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러나 그렇게 되려면 허위사실을 조작해서 유포하고, 그것을 근거로 누군가를 몇 년째 사이버불링하거나 외모를 조롱하며 저열하게 집단 따돌림 가해하는 일부터 우선 사라져야 한다. 그런 폭력이야말로 나와 같은 바람을 가진 자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싸워야 하는 대상이다. 가만히 모른 척하고 눈 돌리면서 ‘저러다 말겠지’ 해서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나보고 어쩌라는 것이냐’고 묻지 말자. 특정 개인을 향한 괴롭힘을 보면 적극적으로 ‘그런 짓은 하지 말라’고 말려야 한다. 아무리 정치적인 입장이 나와 다른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정치적인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식의 괴롭힘을 당해서는 안 되고, 그렇게 괴롭히지 말아야 한다는 당연한 상식이 한국어 인터넷에 뿌리 내릴 수 있도록 조금씩이라도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 우리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다음 세대의 인간들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