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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기고문

나의 A들에게

나의 A들에게
단도

 

 

 

 간혹가다 인간의 배에서 인간이 아닌 게 태어나는 시대가 있었습니다.

 

 여기도 한 친구가 있습니다. 이름을 주지 않는 것은 너무하니 A라고 부르도록 합시다. A에게는 작은 고민이 있습니다. 손가락 사이사이에 물갈퀴가 자라나고 있었거든요. 아니면 갖고 태어난 것이었던가, 하여간 중요하지 않습니다. 물갈퀴 정도는 넘어가 줄 수 있습니다. 문득문득 A를 볼 때 얘네 애비가 물고기에 대고 수음을 하는 장면이 상상됐지만 넘어갑시다, 얘만 물갈퀴가 있는 건 아니니까요. 이런 건 장갑을 끼면 눈에 띄지도 않고요. 그렇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A의 피부가 파열되어 진피가 결결이 드러나 뻐끔거리고 눈구멍 위를 흰 막이 과육처럼 덮기 시작하자, 그가 천천히 물고기 사체의 냄새를 풍기기 시작하자 조금이나마 말을 걸어주고 동정해주던 동네 노점 아주머니, 길거리의 아이들, 시장 바닥의 거지들조차 그를 무시하게 되었습니다. 거리를 나다니는 발걸음마다 따라붙는 시선들과 침묵, 뒤통수 너머에서 차츰 피어오르는 수군거림을 너무나 잘 알았기에 그는 말을 아끼고 외출 횟수를 줄입니다. 사람이 적은 좁고 어두운 길로 빙 돌아서 다니기도 해보고 옷을 겹겹이 껴입어 모양을 가리기도 해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지난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육체가 그를 배신합니다. 그의 몸 위를 오염이 지배합니다. 아니 그는 살아 숨 쉬는, 움직이는 오염물입니다, 눈을 뒤룩뒤룩 굴릴 줄 아는, 그 머릿속으로 도대체 무슨 생각이 오가는지 알 수가 없는, 어째서 진작 자살이나 하지 않았는지 알 수가 없는 외물입니다. 혐오와 공포가 향해 흐르는 대상입니다.
 주변을 모두 부패시키고 허물어져 내리게 만드는 존재로서 당연한 수순으로 먼저 자기혐오를 느낍니다, “아니 그런데” 하는 억하심정도 들겠죠. 어찌 되었건 그가 보아도 그는 혐오스럽습니다. 거울을 모두 치운 집 안엔 늘 그늘만이 자리합니다. 창을 여는 일이 없고 간혹가다 시내에 비친 저의 얼굴을 볼 때마다 경기를 일으킵니다. 인간이 아닌 것이 된 기분은 어떨까요? 손바닥에서 질척이는 점액과 그에 녹아든 살갗 결결이 배어 나오는 기분은 어떨까요? 팔등에서 핏덩어리가 멍울져 뚝뚝 발등 위로 떨어지는 기분은 어떨까요? 기생충과 역병의 숙주가 된 기분은 어떨까요? 아가리 너머에서 피거품이 보글거려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사람의 형상이 아주 무너져내리자 A의 사람으로서의 과거는 전혀 없던 일이 된 것처럼 그의 면전에서 가게가 닫히고, 사람들이 갈퀴와 낫의 날을 세워 위협하며 꺼지라 합니다. A는 비통에 차 발길을 집으로 향합니다. 그를 품었고 양육해낸 보금자리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제 어머니 어둠으로 향합니다.

 

 

 A의 어미가 A가 걸음도 떼기 전에 집을 나가고,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제 배로 낳은 애새끼 손에 물갈퀴가 달렸는데 뻔뻔하게 얼굴 들 수 있으면 사람이 아닌 거겠죠, 아니면 혹시 누가 압니까, 괴물이라 괴물들이 모두 그런 것처럼 발정이나 나서는 연약한 인간을 겁탈하고 번식한 후에 줄행랑친 것인지. 하여간 그와 달리 매일 술이나 퍼다 마셨다뿐이지 늘 함께해 주었던 유일한 사람인 아버지가 핏줄이 터져 금방이라도 눈구멍에서 빠져 데굴데굴 땅바닥을 구를 것 같은 눈알을 부릅뜨고 튀어나와 마중합니다. 금방 멱이라도 잡고 싶지만, 그의 존재 자체가 불결하여 어찌 손을 조금이라도 대지 못하는 모양으로 발이나 동동 구르며 고함을 고래고래 지릅니다. 그가 피기침을 한답니다. 옆집 할애비가 시름시름 앓다 숨이 넘어갔는데 시체를 보니 손발 끝이 푸르게 일어나 있었답니다. 주점에서도 딸내미 하나 간수 못 했다고 돈이 있어도 받아주지를 않는답니다. 주정꾼들마저 상종도 안 해준답니다. 붉으락푸르락해서 외려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은 그의 낯을 엷은 천 너머로 물끄러미 바라보던 A는 천천히 두 팔을 벌립니다.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가엾지만 뻔하게도 저를 부정한 “것” 취급하는 눈길들을 떠올렸겠지요. 서럽기도 했을 겁니다, 아니면 금방이라도 제 호흡을 막아 죽일 것만 같은 고통이 목구멍 너머 깊은 곳에 똬리 튼 것을 다시금 확인했을까요. 주춤거리는 그에게 느리지만 확실한 발걸음 걸음걸음으로 다가갑니다. 그것은 산이 육중한 몸을 움직이는 것과 같았고 집채만 한 해일이 모래사장을 꾸역꾸역 집어삼키는 모양과 같았습니다. 미친년이 어딜 만져, 저리 안 비켜, 더럽게, 옮잖아, 제발, 나가, 죽어, 나가, 이러지 마, 공포에 질려 주먹이고 발길질이고 내지르는 제 아비를 A는 밀쳐지고 멍이 들고 생채기가 나면서도 꿋꿋이 품에 안습니다. 아니 가둡니다. 그것은 A에게는 수년만의 처음의 신체 접촉이었을 겁니다. 그 어떻게 살아있는지 모를 몸뚱이 어디서 나왔는지 전에 없던 힘으로 그의 몸을 팔로 휘감습니다. 그가 하는 어떤 말에도, 몸부림에도 흔들림 없이. 떨리는 목소리가 점점 가라앉고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듯이 저항이 사그라들어 아버지의 육체가 A의 녹아내린 젖가슴 위에 순순히 내려앉자 그제야 팔에 힘을 풀어 확인해보니, 에그머니나, 온몸의 피부가 A와 닿은 부분부터 시작해서 붉고 보랏빛 나는 발진이 올라와 게거품을 물고 질식해 있습니다. A는 수 초간 그것의 얼굴을 바라보다 다시 힘주어 꽉 안습니다. 이번엔 저항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볕 하나 들지 않는 집에서 A는 빗장을 걸어 잠그고 제 아비였던 고깃덩어리와 함께 두문불출합니다. 문틈, 창문 틈새로 새어 나오는 악취는 점점 심해지고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됩니다. 마을에 기침하지 않는 자가 없고 사람이 매일 죽어 나가자 어느 날, 비루한 보금자리 한 귀퉁이에 불이 붙습니다. 매캐한 연기에 참다못해 콜록이며 거미줄 쳐진 현관문을 열어젖히자 햇살이 A를 작살처럼 꿰뚫습니다. 며칠인지, 몇 달인지만에 마주한 환한 빛에 그는 비틀거립니다. 불분명한 시야엔 병색이 완연한 낯익은 얼굴들이 횃불이고 창이고 농기구고 무기 될 만한 것을 간신히 들고 서 있는 것이 들어옵니다. 수가 많지 않습니다. 간신히 스스로를 추슬러 A가 걸음을 내딛자 파리 떼가 풀썩이며 피어오릅니다. 희미한 악취와 부패가, A는 물론이고 활활 타오르는 집안에서 화재 연기를 타고 훅 불어와 그들을 집어삼킵니다. 사람들이 휘청입니다. 콜록이며 힘겹게 연기를 내쫓는답시고 부채질이나 해대다 순간, 하나하나 어, 어어, 하고 쓰러져 내립니다. 살이 늘어나나 싶더니 액체처럼 주르륵 흘러내립니다. 상황 파악이 빠른 사람들은 먼저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며 손에 든 걸 내던지고 달아나다가 자빠지기도 합니다. A는 그 모든 것을 바라보고만 있습니다. 언젠가 해수처럼 사냥당하기라도 할 것을 예상 못 한 건 아니었을 텝니다. 혹은 집이 불타고 사람들이 저를 농기구로 꿰뚫어 화형대에 세우는 미래는 그 썩어가는 머리통으로도 상상이 됐을 터지요. 그러나 이건 아니었습니다.
 이내 고요가 찾아듭니다. 쥐 죽은 듯이, 새 소리 하나 없고. 햇빛만이 여전히 그 위를 강타하고, 그것 말고는 이웃집이나 그 건너편 집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도, 이 모든 소동에 창밖을 내다보는 얼굴도 하나 없습니다. 움직이는 것은 파리떼 뿐입니다. A가 가만히 서서 존재하기만 했는데 모든 것이 조용해졌습니다. 그 어떤 시선도, 말소리도, 숨소리도, 존재도 없습니다. 그곳엔 죽음과 A만이 존재합니다. 아니, A만이 존재합니다. “사람” 없이는 괴물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는 반짝, 희열을 느낍니다. 오랜만에 숨이란 걸 제대로 쉬어 봅니다.

 

 

 천천히 걸음을, 걸음이라 할 정도로 분명하지 않을 지경이 됐지만 하여간에, 어떻게든 몸을 옮깁니다. 말도 할 수 없고 펜도 제대로 쥘 수 없는 그가 이야기를 남기기란 불가능한 일일 겁니다. A에겐 언어가 없습니다. 울음과 비명이 분간되지 않고 격정과 고독 사이에서 헤맵니다. 인간은 절대 A의 곁에 살아 도달하지 못합니다. 그를 중심으로 까마귀 떼가 나선을 그리며 돌고 온갖 해충과 부패물이 휩씁니다. 그는 재해이고 괴물입니다. 전염병이고 신입니다. 오물 덩어리를 남기는 느린 걸음은 점차 빨라집니다. 경쾌해집니다. 얼마나 많은 살점을, 병균을 제 뒤에 낳든 상관없습니다. 그는 오랜만에 기분이 좋은 것을 느낍니다. 제 딴엔 음악이라고 뭔가를 흥얼거려도 봅니다. 그게 얼마나 어설프고 우스꽝스러울지는 상관없습니다. 얼마나 기괴하고 징그러운 광경이었는지도 상관없습니다. 볼 사람은 아무도, 아무도 없었고 그는 사람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체액을 사방으로 흘리며 비틀비틀 스핀을 돌고, 날듯이, 제 딴에는, 도약합니다. 숨이 가쁘고 곧 심장이 터질 것만 같이 되었지만 죽어도 상관없을 만큼의 충만감을 그는 느낍니다. 시체를 밟고 지나가는 감각을 그는 잊지 못할 겁니다.
 모든 것이 죽어 나갈 것입니다. 어느 날 영웅이라도 나타나 그를 도살한다면 좀 나을까요? 아니 그런 일이 가능은 할까요? 산불을 물 몇 동이로 끌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직성이 풀릴 때까지 나무고 풀이고 산이고 집어삼키도록 내버려 두는 수밖에 없겠죠. 그것은 언제까지고, A가 괴물이 아닐 때까지는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간혹가다 인간의 배에서 괴물이 태어나는 시대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