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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기고문

그저 오타쿠의 증언록

그저 오타쿠의 증언록
조디악



 

안녕하세요. 저는 그냥 오타쿠입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많은 분이 생소해 하실 분야인 커미션 신청하기, 자캐 커플 놀이, 드림 파기, 개인봇질 등등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트위터 계정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앞 문장에서 사용된 단어의 뜻에 대해 검색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생소하게 느끼시기를 원하며 사용한 말들이니까요) 저는 무지한 사람이라 클러스터라는 단어 자체를 어떤 용례로 사용하는지조차 잘 모르지만, 아마 저의 클러스터를 나누자면 앙상블 스타즈 클러스터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앙상블 스타즈가 무엇인가 하면, 남자 아이돌 캐릭터를 잔뜩 내세운 오타쿠 겨냥 가챠 게임입니다.

 

성노동에 대해서라면 조금 알고 있습니다. 소중한 제 주변인들 중 몇몇 분들이 누구는 조건, 누구는 오피스텔, 또 누구는 바에서 일하며 생계를 이어나가거나 본인에게 중요한 존엄을 채우고 계셨기에 가까이 지내며 이런저런 일들을 들을 기회가 있었거든요. 제가 스스로를 성노동자라고 정체화하는 분들을 처음으로 만난 것은 아마 2017년의 봄과 여름 사이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마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대부분의 독자들이 짐작할 수 있듯, 그분들은 메루메루 님과 밀사 님입니다. 제가 메루메루 님과 밀사 님, 두 분에 대해서 알게 된 경위에 그렇게 흥미진진한 면이 있는 건 아니구요. 평범하게 저와 똑같이 오타쿠질을 하기 위해 트위터를 운용하던, 이미 메루메루 님과 밀사 님, 두 분과 친분이 있던 실제 친구의 알티를 통해 “이 사람들 재밌다!”라고 생각해 팔로우하고, 맞팔로우를 받고, 뭐 그렇게 서로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트위터에 기거하는 오타쿠 중에서도 내면의 트라우마를 연성이나 썰의 형태로 자주 기고하던 편이라, 그런 점이 두 분의 흥미를 끌었던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장황하게 썼지만, 사실 계기 같은 게 무엇이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밀사 님과 메루메루 님은 저와 맞팔로우 상태로, 가끔 대화도 하고 같은 화제를 알티하며 즐겁게 노는 동시에 성노동에 관련된 트윗을 알티하거나, 직접 올리셨습니다. 상술한 것과 일맥상통하게도 저는 두 분의 그런 활동 덕분에 성노동이라는 게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그런 일을 직업으로 삼으며 돈을 벌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요.

 

당시 얄팍한 인연을 기저로 하여 판단하기에도 밀사 님은 참 아름답고 고운 글을 쓰시는 분이었고, 메루 님은 제가 만나본 사람 중 그 누구보다도 지식욕이 충만하신 분이었습니다. 저에게 있어 밀사 님과 메루 님을 한 문장으로 설명해보라고 말하면 2017년의 저는 그렇게 말했겠지요. 그리고 저의 대답은 2020년 현재에도 비슷합니다. 밀사 님은 아름답고 고운 글을 쓰며 늘 약자의 편에 서는 분이시고, 메루 님은 충만한 지식욕으로 언제나 배움의 길을 걸어오셨고 생전 저를 많이 좋아해 주셨습니다. 제 다른 친구들이 교편을 잡고 그 대가로 녹봉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회사에서 엑셀을 치며 그 임금으로 월급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메루 님과 밀사 님은 자신에게 있는 재능을 사용해 돈을 벌었습니다. 그게 성노동이었을 뿐이고요. 직업 보고 친구를 사귀는 거 아니잖아요. 그렇다면 제가 두 분의 직업이 성노동자라는 사실에서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리며 억지로 ‘건전한’ 면만 보고 친분을 유지해 왔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성매매와 성노동이라는 단어의 맥락 차이도 솔직히 잘 모르고, 단 한 번도 운동권에 서 본 적이 없는 평범한 오타쿠인 저는 그냥 그렇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저는 친구가 공장에 취직했다고 하면 그렇구나, 힘내, 몸조심해, 하고 말해왔어요. 친구가 공무원 시험에 붙었다고 하면 그렇구나, 힘내, 몸조심해, 하고 말해왔어요. 완전히 같은 맥락으로 저는 오픈리 성노동자인 밀사 님과 메루 님께 그렇군요, 힘내세요, 몸 조심하시구요, 라고 말해왔습니다. 그냥 제 생각이 그랬습니다. 솔직히 이 점에 대해서 저와 생각이 다르신 분들을 설득할 자신은 없습니다. 그것은 성노동을 생업으로 직접 겪으셨던 메루 님과 밀사 님이 오래 투쟁해 오면서도 쟁취하기 참으로 힘들었던 일이고, 무엇보다 이 글의 주제도 아니기 때문이지요.

 

저는 메루 님이 돌아가시기 전, 밀사 님과의 친분보다는 메루 님과의 친분이 좀 더 깊었습니다. 직접 만나서 같이 밥을 먹고 쇼핑을 하고 그랬고, 메루 님은 혼자 지내기가 심심하다면서 저를 자신과 사실혼 관계에 있던 사장의 산하에 있는 모텔에 데리고 가서 방을 하나 배정해 주시며 여기서 몇 주 동안 자신과 먹고 자고 놀자고 제안하셨습니다. 마침 휴학하고 할 일이 없었던 저는 그 재미있어 보이는 제안을 아싸리 하고 곧장 승낙해 익산으로 내려갔구요. 그리하여 저는 메루 님이 돌아가시던 바로 당일까지 메루 님과 물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지금부터는 밀사 님과 메루 님에 대해 당치도 않게 퍼진 유언비어를 타파하기 위해 제가 직접 보고 들었던 것들을 이야기하겠습니다.

 

첫째로 메루 님은 돌아가시기 전, 혹은 한참 이전부터 성노동을 직접 하고 계시지 않았고, 알려진 대로 사장에게 감금 혹은 착취당하고 있던 상태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메루 님이 관리하시는 모텔에서 지내고 있었기에 카운터 딸린 방(지금의 제 자취방보다 커다란 공간입니다!)에서 공부를 하거나 요리를 하거나 자신의 취미 생활에 한창이신 메루 님을 보러 갈 기회를 언제든지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메루 님과 생활한 2주 남짓의 시간 동안 메루 님은 언제나 그곳에 계셨습니다. 밤에도, 낮에도, 새벽에도요. 사장은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고요. 메루 님이 자주 외출하지 않으셨던 까닭은 감금 같은 것이 아닌 본인의 칩거적 성향 때문이었겠지요. 왜냐면 제가 클렌징 폼이 필요하니 쇼핑을 가자, 김치만두가 먹고 싶으니 나가서 사 먹자, 같이 밤의 공원에 가서 술을 마시자, 등의 제안으로 소소하게 메루 님을 조를 때 메루 님은 언제나 그것에 기쁘게 응하시며 편안히 자리를 비우셨으니까요. 메루 님은 당시 가난한 대학생이었던 제가 혈혈단신 타지에서 편히 지낼 수 있도록 온갖 사치품들을 구매해 주셨고, 그것은 메루 님 본인이 모텔을 관리하며 번 돈이었습니다. 사장과 메루 님과의 사적인 관계에 대해서 저는 자세히 아는 바가 없지만, 보통 남자가 여자를 노예화하며 착취할 때에 여자가 언제든 자기 마음대로, 편하게 한 번에 수십만 원씩의 돈을 운용할 통로를 전적으로 맡기지는 않지요. 사장과 메루 님의 전화 통화를 들은 일도 있는데, 메루 님은 편하게 “아, 오빠, 진짜, 입 좀 다물어. 애(저를 말합니다.)한테 민망한 소리 하지 마.” 하고 웃으며 말씀하시거나 했습니다. 메루 님이 사장과 함께 지내기로 한 본인의 결정에 대해 저에게 말씀해주신 일도 있었습니다. 메루 님은 자신이 취할 수 있는 애정과 이득을 투명하게 판단할 수 있는 현명한 분이었고, 본인이 기쁘게 받아들이는 가학적 성향과 피학적 성향을 동시에 가지고 계셨고, 그렇기에 저는 메루 님의 결정을 들으며 납득했던 기억이 납니다.

 

둘째로 밀사 님이 포주 생활을 하며, 메루 님을 익산의 룸으로 끌어들였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에 대한 반박입니다. 애초에 시간적 순서가 맞지 않습니다. 사장이 소유한 모텔의 경영자 역할을 맡기 위해 익산에 먼저 내려가신 것은 메루 님이고, 밀사 님은 메루 님의 “룸의 실장을 해보지 않겠느냐”라는 제안에 승낙해 익산에 내려가신 것입니다. 제가 알기론 그 시기에도 메루 님은 이미 성노동을 현역으로 뛰고 계시지 않았고요. 이와 같은 사실관계에 따라 봅시다. 정말 이상한 용어지만 밀사 님을 포주라 치면 메루 님은 포주의 포주가 되겠지요.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밀사 님과 메루 님이 우리가 그나마 페미니즘 성향을 가진 성노동 업소를 만들어보자! 이곳에서 일하는 여자들의 권리를 조금이라도 더 챙겨줘 보자! 하고 합심하여 모이셨을 때 헌터x헌터를 덕질하느라 바빴습니다. 그러므로 직접 본 것만 이야기하자면, 제가 익산의 모텔에 처음 도착했던 2018년, 그곳에 딸린 문제의 룸 두바이는 이미 거진 폐허 상태였습니다. 먼지가 앉았다거나, 간판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거나, 그런 가벼운 문제가 아니라 그냥 가게 구실을 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실제로 제가 모텔에서 지낼 때 문제의 룸에 출입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구요. 메루 님조차 으 저기는 영업 안 해요, 못 해요. 하면서 들어가지 않으셨습니다. 폐쇄된 룸에서 어떻게 일을 할 수가 있을까요……. 이에 관련된 더 자세한 이야기는 밀사 님이 직접 증거를 첨부해 긴 타래를 달아 주셨기에 더 첨언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메루 님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실 때에 메루 님께서 직접 배정해 주신 방에서 자고 있었고, 종업원들이 예비 키로 제 방에 들어와 다급한 일이 생겼다며 저를 깨우기에 일어나서 카운터로 내려가, 메루 님의 시신을 직접 보았습니다. 종업원 중 누군가가 저에게 심폐소생술을 해보라고 말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저는 덜덜 떨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아직도 저는 심폐소생술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리고 저는 도착한 경찰분들께 며칠간의 경위를 설명하고, 경찰차로 호송되어 경찰서에 도착해 네 시간가량의 이런저런 조서 작성을 하였습니다. 체감상으로는 십 분도 지나지 않았던 것만 같은데 바깥 하늘이 어느새 어둑해지던 것을 똑똑히 기억합니다. 조서 작성을 맡았던 경찰 한 분께서 집에 돌아가는 차에 탄 제게 안부 전화를 주셔서, 그때서야 울음이 터졌습니다.

 

성노동이라는 행위 자체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자살자의 심리에 대해 잘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분들도 제발 부디 밀사 님의 마음만은 헤아려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많은 지인들이 메루 님의 사망 현장에 있던 저를 불링에서부터 막기 위하여 저의 존재를 필사적으로 숨기고 지켜주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PTSD와 불안감 탓에 그 사건으로부터 이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잠들기 직전 여덟 알의 진정제를 먹어야 겨우 잠이 듭니다. 겨우 이제야 삼 년이 된, 사실상 알고 지낸 것은 일 년밖에 되지 않았던 메루 님을 떠올리면서 말입니다. 밀사 님과 메루 님의 인연은 이것의 곱절의 곱절은 되는 것으로 압니다. 십 년을 알고 지낸 친우가 어느 날 문득 자신의 곁을 떠나버린 거예요. 게다가 고인과 자신의 관계에 대해 가장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사람들이 친우의 죽음에 대해 그건 전부 당신 탓이라며 손가락질하고 있는 상황이 지금입니다.

 

저는 침묵했었습니다. 지금도 이렇게 익명적인 글을 기고하는 것으로 간접적인 침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밀사 님은 계속 입을 열어 싸워오셨습니다. 그런 밀사 님께 사죄와 경의를 표하는 것으로 글을 마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