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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기고문

and always will until the end

and always will until the end
다연



메루는 내게 귀여운 사람은 귀여운 사람을 알아본다고 해주었다. 서로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알려주었다. 궁금한 사안이 있을 때 종종 메루가 했던 말들을 찾아봤다. 딱 그정도로 교류했던 트위터 친구였다. 동갑내기기도 하고,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는 귀여운 사람이었으니까 언젠간 친해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막연히 이다음이 항상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지.

 

메루는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내가 본 메루는 사람을 미워한다고 해놓고 사람을 누구보다 사랑할 줄 알았다. ‘세상에는 흔하고 천한 일들이 가득하다’고 믿고 말하면서도 감각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비아냥대는 걸 좋아하고, 과격하게 말하고, 가끔 무모해보이기도 했지만, 메루는 어쨌든 나아가는 사람으로 보였다. (이 모든 것은 메루에 대한 오독일 것이다. 부족한 언어로라도 메루를 시공간 한켠에 붙들어 두고 싶은 나의 욕심이다. 우리는 영영 너를 상실했으며, 우리만으로는 결코 너를 다시 소환해내거나 이해할 수 없다. 그러니까 어서 내가 뭘 아냐고 일갈해줬으면 좋겠다.)

 

메루는 메루를 스쳐 간 사람들을 영영 바꿔 버리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메루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 메루를 조금씩 닮아버렸다. 자기 보전은 메루보다 못하면서 몸 내던져 타인을 사랑한다. 그리고 애도 앞에서는 어쩔 줄 몰라 하는 것 같다. 이렇게 뻔뻔하지 못해서야! 밀사님과 친구들은 메루에게 혼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메루의 반짝임을 흠모할 수밖에 없어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애도의 공동체가 되었다. 폭력을 묵과하지 않으려고, 서로의 취약한 존재에 책임을 지고 지켜주기 위해서 ‘우리’가 되었다. 그러니까 지나치게 진지해진 ‘우리’의 노잼을 용서해줬으면 한다.

 

사실 답은 하나도 모르겠어. 이제 너를 잃어버린 우리는 더 이상 예전과 같을 수 없고, 우리는 영영 타자가 되어버린 너와 어떻게 함께 살아가야 할까… 사실은, 정치적인 맥락과 애도에 대한 이론들은 다 모르는 척하고 그냥 상실을 슬퍼하고 싶었어. 그저 너와 더 친해지지 못한 나의 쫄보스러움을 원망하고 네 똑똑하고 재밌는 트윗과 블로그 포스트들을 더는 볼 수 없음을, 너에 대한 정보를 남에게 전해들을 수밖에 없음을 속상해하고 이렇게 멍청한 자들이 네가 사랑하던 사람들을 모독하고 너의 삶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꼴에 분노한다고 기력을 쏟기는 싫었어. 메루야, 내가 윤리적일 수 있는지, ‘잘’ 애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너를 사랑한 사람들이 애도를 할 수 있는 권리를 위해서 싸울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애도를 계속할 것을 약속할게. 너의 죽음보다 너의 삶을 더 많이 기억할게.

 

메루 덕분에 알게 된 노래, <smells like teen spirit>의 가사를 좋아해.

“우리의 작은 무리는 언제나 존재해 왔어. 그리고 끝까지 계속 존재할 거야.”

 

그리고 밀사님께. 밀사님이 감내해 온 폭력을 너무 오래 방관해왔던 것 같습니다. 밀사님의 발언이 옳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더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습니다. 저는 밀사님이 굳이 같이 천박해지거나 본인의 언어를 타협하지 않는 점, 좀 더 다수가 납득할 만한 말을 덧붙이지 않는 점을 좋아하지만, 밀사님이 더 괴로운 게 싫어요.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언제 한 번 작은 목소리를 낸 적이 있었는데 그걸 보신 밀사님이 덕분에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고, 고맙다고 말씀해 주신 적이 있어요. 저도 그렇고, 다들 밀사님은 강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밀사님도 그 친구들도 많이 소진되었을 거라고 짐작합니다. 애도를 ‘성공’하느니 ‘실패’하느니 하기 전에, 밀사님에게는 애도할 수 있는 기회와 정신적 여유조차 주어지지 않았으니까요. 메루를 애도하면서 알게 된 것은 빛나는 사람들도 혼자 남겨둬서는 안 된다는 당연한 사실이었어요. 아프지 않은게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취약한 걸 알면서도 싸우는 것이라는 걸요. 밀사님은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삶을 더 이어갈 수 있도록 용기를 주셨고, 이번엔 저희의 차례겠지요. 미약한 힘이나마 보태 밀사님을 응원하고 지지해요.

 

내가 아는 한, 페미니즘은 환대받지 못한 이들의 언어여야 한다. 삶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언어여야 한다. 좆빨러사라져야 할 존재든 페미니즘에 민폐든 뭐든, 지금 여기 실존하는 사람들이 있다. 취약함으로 서로에게 연루된 우리는, 노래 가사처럼 언제나 존재해왔고 또 계속 존재할 것이다. 이를 말해온 메루와 밀사님에게 감사한다. 우리의 언어를 탈취하려는 시도와 지금도 행해지고 있는 폭력에 반대하며, 끝까지 계속, 메루메루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