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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기고문

당신들이 무서워서 숨어있습니다

당신들이 무서워서 숨어있습니다
녜녕

 

 

 

저는 녜녕이라는 이름으로 17-18년도에 활동했던 성노동 운동가입니다. 왜 과거형이냐면, 지금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 저는 당신들이 무서워서 숨어있습니다. 최소한의 발언, 최소한의 연대, 제가 했던 활동 기록을 남기는 것이 전부입니다. 왜 그렇게 무섭냐고요, 저는 메루메루 님처럼 죽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밀사 님처럼 친구를 추모하다 인터넷의 웃음거리가 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주변에서 말하길, 저는 겁이 없는 사람입니다. 저는 성노동을 하며 많은 폭력 상황에 노출되었지만, 그 속에서 겁먹은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요. 저는 그런 피해 사실을 농담 삼아 모험담처럼 늘어놓기도 합니다. 그런 제가, 당신들에게는 겁을 먹었습니다.

 

정말로, 당신들 집단의 악랄한 악담은 신체적 폭력을 능가하는 듯했습니다. 당신들은 사람에게 자살하라 폭언을 퍼부었습니다. 그 사람이 진짜로 자살하자 그 죄를 애먼 사람에게 뒤집어씌웠습니다. 그 피해자에게 계속해서 당신이 고인을 죽였다며 비난하고, 고인을 팔았다고 매도하고, 고인을 속였다고 중상했습니다. 인터넷이란 광장에 피해자의 얼굴 사진을 걸고 비웃고 조롱했습니다. 일상조차 파괴하려 협박했습니다. 끔찍했습니다. 당신들은 이른바 ‘밀사 패기’를 놀이처럼 즐겼습니다.

 

궁금했습니다. 밀사라는 인격체가 당신들에게 무엇인지. 그 인격체는 지하철에서, 카페에서 당신들을 지나치는 당신들과 똑같은 존재인데, 그가 그렇게 당신의 버스 옆자리에 앉게 되어도 침을 뱉을 것인지. 왜 그렇게 밀사가 증오스러운 건지. 일베를 하는 남자보다 밀사에게 더 가혹한 이유는 대체 무엇인지.

 

남자는 무섭고, 밀사는 무섭지 않아서? 창녀 따위는 경찰의 도움도 못 받으니까?

아니면, 그냥 재미있어서?

아니면, 페미니즘의 정의를 위하여?

 

어떤 답도 저에겐 공포스러울 뿐이어서, 저는 숨었습니다. 메루메루, 밀사 다음은 제가 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으니까요. 아니, 사실 완전히 숨기는 실패했습니다. 메루메루 님의 메인 트윗은, 제가 녜녕으로 활동할 시절에 받았던 많은 불링 메시지 중 하나이니까요. 저에게 향했던 악담이 이제 영원히 고인의 계정에 남아 버렸습니다. 저는 묶이고 매였습니다. 완전히 숨을 수 없어요. 죽은 사람에게 어떻게 저를 잊어달라고 하나요? 같은 뜻으로 트위터에서 활동했던 사람이 자살하고, 그 사람의 계정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 저는 아직도 너무 괴롭습니다.

 

당신들이 정의라고 칩시다. 그럼, 그 정의의 이름 아래 행하는 폭력들이 그렇게 재미있었나요? 당신들은 우리가 왜 미웠나요? 정말로 성노동론자이기 때문에, 그것뿐이었나요?

 

그렇게 숨어있던 제가, 활동을 최소화하면서도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이제는 정말 멈추셨으면 해서입니다. 할 만큼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라도, 부탁이니, 사람에게 폭력을 그만둬 주세요. 사람을 함부로 비웃지 말아 주세요. 사람의 말을 함부로 깔보지 마시고, 가르치려는 태도를 멈춰주세요. 잊지 말아 주세요. 어떤 말을 하든, 어떤 운동을 하든, 이 운동은 사람이 하는 운동입니다. 사람을 차별하고 죽이기 위해 하는 운동이 아니라, 그냥 힘들어서, 좀 더 안전하게 일하고 싶어서, 일하다가 욕먹고 싶지 않아서 하는 운동입니다.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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