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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기고문

생존 너머까지 살아가기 위해서

생존 너머까지 살아가기 위해서
김부갹

 

 

 

트위터를 하지 않았을 때부터 밀사를 알고 있었다. 처음 접한 건 다음 카페 여초 커뮤니티의 한 게시글에서였고, 내 주변에 페미니즘을 긍정하는 사람들이―그것도 적지 않은 인원이― 밀사-성노동자-성노동론-메루메루 등에 대해 토론의 장(?)을 여는 것을 보기도 했다. 그 당시 나는 성노동자였다. 그리고 당연히 그 토론에서 당사자성을 밝힐 기회도, 생각도 없었다. 그저 침묵했다. 그곳엔 창백한 주검 메루메루와 여자를 죽인 마녀 밀사만 있었다. 밀사는 비난을 받았고 메루는 동정을 받았다. 밀사-메루는 그렇게 창녀이자 마녀로, 창녀이자 성녀로 각자 혐오당하고 있었다.

자매애로 모든 여성들을 포용(하는 척)하느라 지친 그들에게, 메루와 밀사 둘은 아마 오아시스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마음껏 창녀를 혐오할 기회가 주어졌고 다들 이곳에서만큼은 거리낌 없이 각자의 밑바닥을 여실히 드러냈으니 말이다.

 

다음 카페 '성노동' 검색 결과.


위 이미지는 지금도 다음 카페에 성노동이라 검색하면 쉽게 볼 수 있는 대표적 글들이며, 해당 게시글의 제목은 ‘정신적 아편’, ‘성노동을 사랑하는 성노동자’ 등 자극적인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에선 메루의 블로그 글을 먹기 좋게 잘라 전시한 글도 있다. 그리고 그 밑엔 저렇게 똑똑한 사람이 어쩌다가…… (성노동 같은 말에 꼬여 넘어가서 자살하다니) 슬프다는 댓글이 셀 수 없을 만큼 달려있다. 비단 메루가 아니더라도 자살을 한 사람의 주변인들은 그가 왜 죽었는지 확실하게 단언하지 못하게 마련인데, 수많은 사람이 누가 캡처한 글 몇 개로 고인의 삶을 이해하려고 들지도 않으면서 감히 평가하려 들고 있었다.

여성 우상화도 혐오라던 사람들이 메루를 우상화했다. 예쁘다는 말도 혐오라면서 밀사의 몸과 얼굴을 평가하고, 여자는 크리스마스 케이크라는 말에 불같이 화내면서 밀사-메루의 나이를 들먹이며 ‘인기’의 유무를 따졌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 또한 밀사-메루에게만은 허용됐다. 사이버 명예훼손, 모욕죄 또한 밀사라면 상관 없단 듯이 헐뜯었다. 순전히 사람이기 이전에 창녀라서. 여성 인권을 올리자는 외침에 창녀는 없었다. 창녀가 자신의 노동자성을 인식해서도 안 됐다. ‘성노동말’을 하는 창녀들은 ‘포주’ 아니면 ‘페이 강간의 피해자’가 되었다. 밀사-메루의 실제 관계나 삶은 상관이 없었다.

몇 년 동안 꾸준히 트위터를 중심으로 각지에서 이어져 가는 혐오를 보며 개인적으로 느낀 점은 얼른 ‘머리에 힘줘서’ 탈성매매 하자는 따위가 아니었다. 두려움이었다. 나는 언제든지 한 명의 창녀로서 밀사나 메루가 될 수 있었다. 이를 증명하듯, 일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전보다 심해진 게 피부로 느껴졌다. 그리고 더욱 열심히 성노동자가 아닌 척했다.

그렇다면 창녀는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내가 하는 ‘밤일’이 ‘노동’이다”라고 생각할 권리조차 없는 걸까? 현실은 당장 매일 출근해야 하는데, 지금을 부정하며 살아가면 그 어떤 누가 살아갈 수 있을까? 계속해서 창녀들이 여러 이유로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만 봐야 하는 걸까?

이 연대 기고문은 나의 생존을 위해서 쓰는 것이다. 밀사는 포주가 아니다. 메루메루는 피해자가 아니다. 밀사를 불링할 몇 년의 시간 동안 한 번 검색조차 안 해본 모양인데 구인구직 중인 포주는 밀사처럼 말하지 않는다. 착취 또한 그런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심지어 밀사는 메루가 직접 고용한 직원이었다. 이 모든 증거는 밀사의 트위터에 있다. 정말로 당신들의 말에 허점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당장에 말없이 지켜보던 내가 그렇다.

혐오자들은 당장 밀사와 메루메루 두 사람에 대한 혐오를 멈춰라. 성노동자들을 비난하면 비난할수록 남는 것은 강화된 여성 혐오뿐일 것이다.

#밀사님은가해자가아니다
#메루님을도구화하지마라
#우리는_자격_없는_여성들과_세상을_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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