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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기고문

하나로 연결된 끈

하나로 연결된 끈
타래

 

 

 

고(故) 메루메루님과 나는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그러나 고인의 사망 소식을 그와 나의 겹지인들을 통해 듣게 된 직후, 나는 하염없이 눈물 흘렸었다. 내가 일방적으로나마 고인에게 아주 강렬한 감정을 느꼈던 기억은 아마 이것이 유일할 것이다. 또한 동시에, 이는 밀사님의 연대 요청을 마주했을 때, 내가 연대에 함께 해도 되나 하는 망설임으로도 작용했다. 그 이유 중 하나로 ‘눈물 흘린 것조차 그를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쏟아부어낸 과잉적인 반응이 아닌가’ 하는 자책감이 포함됐었음을 부러 부인하지 않겠다. 마찬가지로 글을 쓰는 동안은, 고인에 대해 느끼는 사적 인상이나 평가 역시 마찬가지로 최대한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술회한들 내 안에서 멋대로 오독되거나 왜곡된 채로 편집된 고인의 모습을 나열해버리는 우를 범할까 염려되기 때문이다. 


4월 1일은 내 생일이고 4월 2일은 고인이 된 메루메루님의 기일이다. 너무도 당연하게도, 누군가에게 이 날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뿐더러 한편으로 누군가에게는 각자가 살아가는 삶에 근거한 다른 의미를 갖는 날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날짜가 언제이든 어딘가에서 사람은 태어나고, 또 어딘가에서는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사람이 인식하는 시간이라는 게, 결국은 각종 희로애락이 겹쳐지는 숱한 순간들의 연속임을 상기하면, 그런 것들은 결국 평범한 일상 그 자체에 지나지 않는단 결론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이 다른 개인에 대해 어떤 기억을 단 한 명일지언정 여럿이 공유하게 되는 순간, 그것은 비로소 특별한 의미를 부여받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사실 고인이 여전히 생을 이어나갔더라면 나에게도 4월 2일은 여전히 그저 그런 평범한 어떤 날로 남았을 것이다.


다만 그럼에도 내가 굳이 고인과 연이 옅었음을 강조하는 이유는 바로, 옅고 가늘지언정 고인과 내가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더욱 확실히 밝혀두기 위해서이다. 연결된 하나의 띠. 말 그대로 내가 사이버 상에서 불링을 하며 그의 생을 난도질하는 사람들을 반대함으로써 고인에게 연대하고 있음을 표명하는 바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와 고인, 우리를 연결해주는 끈은 바로 밀사님이라는 것 또한 분명히 해두고 싶다. 고인을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악의적인 루머에 시달려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은 고인과 누구보다 각별했을 사람인 밀사님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유명을 달리했으니 알 길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인 역시 밀사님을 아끼던 사람이었기에, 밀사님의 아픔에 동조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으셨으리라 능히 짐작된다. 그리고 나 역시 밀사님을 친애하는 마음은 그 방향성이 어떻든 간에 본질적으로 고인과 다르지 않으리라 확신한다. 죽은 자의 마음도 산 자의 마음도, 삶을 한 번이라도 살았고 살고 있으며 그를 안다는 것만으로,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의심치 않는다. 그렇기에 나는 연대한다.


메루메루님이 떠났던 그 날 밤은 봄인 탓에 아카시아인지 라일락인지(솔직히 아직도 둘 중 어떤 꽃인지 향을 구분하지 못한다) 모를 산뜻한 향이 바람에 실려 코 끝에 닿았었다. 두어 번 정도 같은 계절이 되돌아온 이 시점에도, 어김없이 봄의 기운을 머금은 바람이 꽃향기를 실어 나른다. 여전히, 평범한 하루의 끝이 그렇게 마무리되는 셈이다. 그러나 저열하고 원색적인 공격에 정신적 타격을 입은 누군가에게 그런 형태의 평범함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고 있다. 그는 또다른 의미로 ‘평범하게’ 지옥같은 순간을 견뎌내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이제 나를 비롯해 평범함의 소중함을 아는 모든 사람들이 고르게 평범히 지내길 바란다. 우리가 원하는 그 평범함이야말로 자명하게도 같은 것을 가리키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어져 있으니까. 우리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듯이, 평범함 또한 편안함에서 기인하는 것이기를 바랄 뿐이다. 그 하나의 염원을 위해 모두가 하나가 되어 싸우는 것이라 생각한다. 끝으로 함께 싸우는 사람들이 하나된 뜻을 가지고 있음을 가장 잘 입증해준다고 여기는 트위터 해시태그의 문구를 아래에 달아두며 글을 맺는다.

 

#밀사님은가해자가아니다

#메루님을도구화하지마라

#우리는_자격_없는_여성들과_세상을_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