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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기고문

당신들의 신앙은 진실이 아니다

당신들의 신앙은 진실이 아니다
캐시

 

 

 

내가 밀사를 처음 온라인으로 접했던 것은, 한 게시글에서였다. 밀사가 한창 욕을 먹고 또 먹던 그 글에서, 나는 처음으로 “밀사”라는 사람을 보게 되었다. 그건 10년 전의 일이다. 그리고 나는 트위터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당시에 열일곱 살이었고, 그렇게 1년 넘게 온라인으로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읽었다. 물론 하나만 본 것은 아니었다. 나는 무수히 많은 것들을 보고, 무엇 때문에 사람들이 그런 모욕을 들어야 했는지를 보고 듣고 배우고 스스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건 10년 전이다. 2010년. 지금은 2020년인데. 그런데, 밀사는 지금도 사이버불링을 당하고 있다. 그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뭐야, 쟤 밀사잖아” 라는 말 한마디로 공론장에서 손쉽게 배제당한다. 그와 함께하는 사람들까지도 사이버불링을 당하고 있다. 나도 트위터에서 겪은 적이 있다. 10년 만에 그 이야기를 하고 싶고, 말할 수 있게 되어 고민 끝에 글을 작성한다.

 

계정 뒤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사람이라는 것을 잊고 사는 것 같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나 현실을 가만가만 되짚어 보면 한 가지 사실만이 현실에 있지는 않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건만, 그것을 너무도 쉽게 잊고 산다. 하나의 결과에는 무수히 많은 사실들이 덧붙여져 있고, 그것들은 매우 복잡한 인과를 갖고 있다. 둥근 구체를 생각했을 때, 반대쪽 면까지 우리가 다 보고 살지는 않는다는 사실은 당연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조차 그렇게 면밀히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하물며 온라인의 글자 몇 자를 통한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것은 완벽하지 않으며, 아무리 그 글자들을 모두 읽는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알 수 없다. 만약 다 안다고 믿는다면, 거짓말이거나 오만이다. 계정을 운용하는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다. 글을 쓰는 것은 사람이다. 당신과 같은. 하지만 당신과는 다르다. 다른 사람은 당신과는 다르다. 당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마음으로 고인은 “나는 성노동을 너무 사랑하는 성노동자입니다”라는 글을 쓰게 되었을까. 사람들은 쉽게 생각할 것이다. 저 마음은 거짓이고, 솔직하지 않고, 그저 그루밍당하는 피해자의 언어라고. 하지만 저 글이 어떻게 쓰여졌는지는 결국 고인 외에는 모른다. 아무리 심리 상담과 심층 분석이 이루어져도, 고인을 알던 이들이 고인에 대해서 이야기하더라도, 우리는 알 수 없다. 나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말하지 않는, 입을 다물어버린 마음을. 우리는 절대로 알 수 없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 수 없다. 함부로 짐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짐작하지 않는 것이 고인을 위한 길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고인의 생전 기록에 대해 멋대로 해석하는 것은 당신의 마음을 섣부르고 무례하게 투영하는 일일 뿐이다. 고인이 겪었던 일을 자신이 겪었던 것처럼 이해하여, 본인 마음대로 피해사실로 주장하는 일일 뿐이다. 그것은 완벽한 오만이다. 당신은 고인이 아니다.

 

밀사는 오래 사이버불링을 당해 왔다. 고인 사후에는 더욱 그랬다. 사람들은 밀사가 고인을 죽인 것이라고 호도했다. 밀사가 걸어왔던 길들이, 그를 더욱 수많고 가혹한 사이버불링에 시달리게 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핑계를 대는 것이다. 그저 자신이 아닌 사람이 걸어온 길이 옳지 않아 보이니 다른 사람의 죽음을 가져다 이용한 것이다. 자신이 그 일을 겪었다면 진작에 자살했을 거라는 모욕을 해대며, 사람에게 죽으라고 말하고 싶어 고인을 데려다 썼다. 고인과 밀사가 당했던 사이버불링의 기저에는 창녀혐오, 여성혐오, 청소년혐오, 고인을 피해자 대상화하기 등의 역겨운 것들이 잔뜩 들어 있다. 당신들은 고인의 시체를 끌어다 대상화하며 다른 사람을 죽이려 들었다. 정말 고인을 죽인 것은 당신들일지도 모르는데. 그 혐오들을 기저에 깔며 먼저 공격한 것은 당신들인데. 고인 사후에도 당신들은 고인의 시체까지 가져가려 드는구나 싶어 역겹다.

 

밀사는 많은 일들을 했다. 가시적인 것은 부정적인 이름뿐이었으나, 나도 그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내가 내몰리기 시작할 때 내게 선택지를 주었다. 다른 길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것밖에 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에 받은 선택지는 내게 엄청난 도움을 주었다. 선택하는 것은 결국 자신이다. 당신들은 밀사를 모욕하며 고인을 동시에 모욕하고 있다. 당신들이 쓴 글은 모두 사실관계가 틀렸지만, 만약 그 글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한다고 해도, 당신들은 밀사를 모욕하는 것도 모자라 고인을, 자신의 삶 하나 스스로 선택하지도 못하는 바보 멍청이로 만들었다.

 

고인을 정말 모욕하는 것은 누구인가? 메루메루빔을 쓰는 사람들인가? 아니면 아직도 사람의 죽음에 온갖 이유를 붙여대면서 애도에 훼방을 놓는 당신들인가? 다시 잘 생각하길 바란다. 스스로가 사람이길 바란다면 제대로 사과해라. 고인이 죽었답시고 유가족과 다름없는 사람들마저 불링하고 죽이려고 드는 본인이 아직도 사람이길 원한다면 제대로 사과해라. 고인을 불쌍하게 여기는 것 자체가 혐오임을 인지해라. 애도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가해자로 몰고 싶어 고인을 피해자로 멋대로 프레임 씌우는 일을 멈춰라. 밀사를 포함해 고인을 애도하고자 하는 이들을 가해자로 몰고, 사실관계 확인조차 되지 않는 일들을 퍼뜨리지 마라.

 

아직도 온·오프라인에서는 밀사에 대한 이야기가 떠돈다. 내가 들었던 말 중 가장 충격적인 것은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냐,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는 말이었다. 그 굴뚝에, 아니, 그 집에 불을 지른 것은 사이버불링 가해자들이다. 모여서 이슈에 입을 털며 수군대며 남에게 죽으라고 쉽게 말하는 그 손가락이다. 사이버불링은 가해가 맞다. 나는 계속 밀사와 연대할 것이다. 이제서야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이 부끄럽지만, 그래도 언제나 연대할 것이다. 지지하고 말할 것이다. 당신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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